<프로젝트 [화:남] 취지문> 2017년 5월 18일

글이 꽤 깁니다. 글 끝머리에 요약내용이 적혀 있으니 시간이 없다면 그것만 읽어보셔도 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글 전체를 정독해주셨으면 합니다.

*
많은 여성들은 화장을 합니다. 이것은 많은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화장품 전체 가격은 사람마다 적게는 10~15만원, 많게는 7,80만원까지 나갑니다. 이렇게 많은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직접 구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이렇게 구입한 화장품에도 사용기한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비용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장을 하려면 화장을 하지 않을 때에 비해 4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야 하고 자기 전엔 20분 정도를 화장 지우는 데 써야합니다. 하루 일과 중에는 무언가를 먹고 난 뒤, 안경 썼다 벗고 난 뒤, 땀이 난 뒤에 틈틈이 수정화장을 해야 하는 귀찮음을 이겨내야 합니다. 흰 옷 입을 때에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 눈이 간지럽더라도 마음대로 비빌 수 없다는 것 등 자잘한 것까지 다 합치면 여성들이 화장에 투자하는 비용은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이유는 화장으로 얻는 편익이 상당하거나 화장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비용이 화장에 드는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화장을 하게 되는 동기는 다양합니다. 먼저 쉽게 떠올릴 수 있게는 ‘자기만족을 위해’ 혹은 ‘자신이 잘 보이고픈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화장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또 자발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기대되는 예쁜 모습이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직업적인 문제로 인해, 주변에서부터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압력으로 인해,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화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화장을 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한 번에 한 가지씩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모든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빈번하다는 데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며, 이때 문제되는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자발적이지 않은 동기에 의해 화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어떠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작용했던 사회적 요인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행동이 정말로 자유로운지, 온전한 자기결정에서 나온 것인지 명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현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행동이 정말 자기만족을 위한 자유로운 행위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코르셋인지 고민하게 되는 이유이며, 또 이러한 고민의 크레바스에 빠져 자기혐오로 고통 받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자기혐오의 고통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의 행동이 온전히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것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은 자신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작용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규정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는 인지적 효율성을 크게 올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A’라는 것들이 특정한 성질을 동일하게 가진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는 간단하게 A와 특정한 성질을 결부시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적립해온 인식체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보수성으로 인해, ‘늘 그래왔던 것들’은 차차 당연한 것이 되고, 이후에는 응당 그러해야 할 것이 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대중매체가 쏟아 붓는 어리고, 예쁘고, 가녀려서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연예인들은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남성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백치미 있는 모습 보여주며, 때로는 마초적인 남성 연예인들을 유혹하기 위해 예쁜 얼굴에 섹시한 춤을 춥니다. 뉴스에서는 ‘김여사’의 운전미숙으로 다른 주민들이 피해 입은 사례를 전달하고, SNS의 인기 페이지들은 탄핵된 대통령의 밑에서 일하던 여성 장관의 화장한 모습과 쌩얼을 비교하며 조롱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화장하고 다니는 수많은 아름다운 여성, 엄청난 미모를 뽐내며 화장품을 선전하는 여배우들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점점 ‘여성’이란 예쁜 존재, 당연히 예쁜 존재, 그리고는 당연히 예뻐야 할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화장을 원하지 않는 여성뿐만 아니라 화장하기를 원하는 여성에게도 화장이 자발적인 행위가 아닐 수 있습니다. 화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여성이 화장을 하는 것이 사회적 억압에 의한 것인 것은 말할 것도 없는 한편, 어떠한 여성이 화장을 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애초에 자신이 원했던 것인지, 혹은 그 욕구를 사회적으로 입력받은 것인지는 쉽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의 화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억압, 즉 여성억압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은 바로 ‘여성혐오’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우리 사회 안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만이 주체가 되는 세계에서 소유되고 거래되는 객체로 파악되며, 남성들은 그 ‘객체’들을 규정할 권력을 갖습니다. 여성들은 이러한 규정체계 아래에서 남성들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열등한 존재로서 멸시받거나, 규정체계에 편입되지 않는(남성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젠더권력을 획득하지 못한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 영역에서 자신의 신체적, 지적, 예술적, 공감적 능력을 통한 자기어필이 아닌, 자신의 외모를 잣대로, 그리고 남성들로부터 받는 성적 호감을 잣대로 자신의 지위를 확인받습니다. 몇몇 여성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 획득하는 과정 또한 상당 부분 남성성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자신을 꾸미는 행위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뽐내거나 잠재적 연인을 유혹하는 행위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그리고 그에 따른 생존을 위한 행위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
앞서 말했듯 여성들의 화장 대부분은 온전히 자발적인 선택에서 나온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 행위에 조금이라도 부당한 사회적 압력이 가해졌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고쳐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일 것입니다. 대신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개인을 다그치고 바뀔 것을 요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옆의 여학우에게 '난 화장 안 해도 아무 신경 안 써' 혹은 '그냥 화장 하고 다니지 마, 그게 억압에 저항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식으로는 여성들이 부당하게 화장을 강요받는 현실이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개인의 행동 변화에 대한 요청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그 인식 변화가 바로 저희 [화:남]프로젝트가 주되게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성질을 고려할 때 여성의 화장을 벗기는 방식이 아니라 남성에게 화장을 씌우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 이전에 여성들이 화장을 지움으로써 겪을 엄청난 사회적 비용들을 여성 개인들에게 감수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남성들에게 메이크업을 강요하는 것이 견고한 남성젠더권력에 대한 일종의 조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또한 이러한 활동은 남녀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예기치 못한 파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화장하는 남성들, 그리고 이들을 환영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은 젠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신선한 인식적, 지성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젠더 이분법 체계의 아래에서 화장하지 않는 여성, 화장하는 남성은 그 구분의 경계를 흐리는 역할을 하게 되며, 이러한 경계 흐리기는 기존의 남녀 구분체계에서 어떠한 경계 안에도 들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들에게 ‘당신들이 자리 잡은 그 곳도 전혀 이상한 곳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화장을 여성들만의 것으로 여기는 사회 안에서 고통 받는 것은 여성뿐만이 아닙니다. 남성은 남성대로 자신을 꾸밀 기회를 박탈당하며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구를 감추도록 요구받으며,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남성 또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희 프로젝트 [화:남]은 남성에게도 화장의 자유를 주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 그럼 다시 결론으로 돌아와 봅시다. 저희 프로젝트 [화:남]은 2주간 남학우들에게 화장을 시키고 이를 알리는 활동을 통해, 1) 여성들이 화장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엄청난 비용을 남성들이 경험함으로써, 2)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에 대해 공감하고, 3)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식 변화에 기여함으로써 4)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회복에 힘쓰고자 하며, 동시에 1) 고착화된 젠더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 인식적 물음을 던짐으로써, 2) 그 구조 아래에서 고통 받던 양성의, 혹은 이분법적 체계에 편입되지 못하는 다른 성적 정체성들을 가진 사람들을 돕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화장을 보는 시선-상> 2017년 5월 24일

대학교 진학하기 이전에, 화장하는 친구들을 보고는 어른들은 곧잘 ‘학생이 화장이나 하고 외모나 가꾸면서 공부를 잘 하겠냐’고 꾸중하곤 했다. ‘대학생 되어서 화장하고 예쁘게 꾸며서 놀라’고 했다. 화장은 학생의 공부를 방해하는 쓸데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와 대학교 진학이며 그 속에 화장의 효용은 없었다. 여학생이 화장을 하면, 주위에서 ‘공부는 안하고 애인을 만들어서 놀 생각만 한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이후 화장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전당대회의 경쟁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에 “거울보고 분칠이나 하고 화장이나 하는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에서 뽑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화장하고 욕 먹는 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화장은 그 자체로서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데만 치중하고 자기 일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한다는 편견의 굴레로서 작동한다.

이 사회에서 화장은 천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자든 남자든 화장을 해서 칭찬받기보다는 왜 본인 시간을 ‘외모 단장’에 썼는지 해명할 것을 걱정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 특히 성적 대상화를 기반으로 하는 편견을 맞게 될 것이다. ‘발랑 까져서’,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남성을 유혹하려고’ 한다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화장 내지 화장한 사람을 보는 시선은 종종 성적이며 대상적이다.

화장은 외모를 한층 더 보기 예쁘게 만드는 수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장하는 여성이 외모에’만’ 신경 쓴다고 잔소리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일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단정히 꾸밀 시간을 본인이 내서 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가?

이미지: 텍스트

 

저희 프로젝트 [화:남]은
"여태껏 화장을 여성들의 몫으로만 여겨왔던 남학우들 다수가 약 2주간 직접 화장을 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지워지는 대표적인 젠더 억압인 '메이크업'에 대해 남성들이 직접 고충을 느끼면서 그 불합리함을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 기간 : 5월 25일 ~ 6월 7일 (평일-10일 동안)
모집 대상 : 남성 누구나
모집 인원 : 최대 15명
신청 기한 : 5월 22일
신청 방법 : 페이스북 메세지 or 010-8538-8228로 문자

*5월 25일 목요일 오후 7시 고려대 구법학관에서 참여자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및 화장 방법 강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10일간 화장에 쓰일 화장품을 이때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25일 강연에 참석하지 않으시더라도 캠페인 참여가 가능합니다!! 대신 신청인원이 15명을 초과할지 여부에 따라 당일 강연 때 제공해드릴 화장품이 일부만 전달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화장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 - “이래도 '선택'이라고?”

내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뻐지고 싶어서. 나의 화장은 ‘자기만족’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었다. 사회가 은연중에 여자의 화장을 강요해서, 그리고 내가 그러한 강요에 굴복해서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자기만족이라는 합리화 아래 거의 강박에 가까운 화장을 한다. 시험기간에도, 엠티에서 밤을 샌 다음날에도 늘 풀메이크업을 유지했다. 남들에게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이 많다.

아침이면 화장할 시간까지 고려하여 그 전보다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는 화장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많이 단축된 시간이다. 아이라인이며 눈썹을 그리는 것이 서툴렀던 때에는 수정을 하고 또 하느라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일도 많았다. 통학시간까지 고려하면 9시 수업을 위해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가까스로 수업에 도착해 “오늘 6시 반에 일어났어ㅠㅠ”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같은 수업을 듣는 기숙사생 남학우들은 8시 40분에 일어났다며 웃었다.
한국 사회는 별 사소한 부분까지 유행을 심하게 탄다. 옷, 머리 스타일, 신발, 심지어 얼굴 생김새까지 매년 유행에 휩쓸리는 마당에, 화장법이라고 유행이 없을 리 없다. 컨투어링 메이크업, 물광 메이크업, 네추럴 메이크업 등 매년 트렌드가 바뀐다. 모든 sns 와 대중매체로부터 차단되지 않는 이상, 나 역시 이런 유행을 접하고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를 하는 것이 기이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이런 트렌드를 따라하고 주위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진다. 결국 나도 모르게 로드샵에 들어가 ‘촉촉한 물광 베이스’를 구입했다. 이상한 자괴감이 들었다.
이렇게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빠듯한 용돈을 쪼개 매번 새로운 화장품을 구입해야 한다. 화장품은 놀라울 정도로 가격과 품질이 비례한다. 백화점에서 파는 비싸지만 피부에 좋은 화장품을 살 것인지. 지속력이 떨어지고 유해성분도 조금 있지만 훨씬 저렴한 로드샵을 이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결국 온갖 블로그와 앱을 총동원해 상품후기를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하고, 그렇게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며 새로운 화장품을 구입한다. 화장을 매일 하기 시작한 뒤로 피부도 많이 나빠졌다. 해결책은 훨씬 비싸고 검증된 제품을 쓰거나, 화장을 잠시 쉬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나의 재정형편상 어렵고, 후자는 트러블로 울긋불긋한 피부를 드러내고 다닐 수 없으니 불가능이다. 그래서 이를 가리기 위해 점점 더 두꺼운 화장을 한다. 악순환이다.

화장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화장해야 한다는 강박이 정말 나의 자기만족에서 비롯된 것일까? 남자들이 단정하게 면도만 하고 외출하듯 내가 단정하게 눈썹정리만 하고 맨얼굴로 첫 대학생활을 보냈다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 있었을까? ‘No Makeup 일 때 제일 예쁜 너’ 라며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빨간 립스틱 대신 투명한 립밤”을 발라도 혈색이 도는 입술과 “메이크업 베이스를 지우면 빛나는 우윳빛 피부”를 갖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을까? “자꾸 거울보고” “몸무게 신경 쓰지” 않으면 사회가 그 여자에게 얼마나 많은 조롱과 억압을 던질지 알고 하는 말일까? 주위에서 여자의 화장이 진하면 진한 대로 “화떡이다”, 엷으면 엷은 대로 “상남자다”라며 재단하는 모습을, 반대로 화장하는 남자는 “징그럽다”며 질색하는 모습을 나는 중학교 때부터 지겹도록 봐 왔다. 이래도 화장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화장, 물론 자기 자유 맞다. 남자든 여자든, 얼굴에 베이스를 발라 뽀얀 피부를 연출하고 눈 위에 선을 그려 커보이게 만드는 것은 자기 의지로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너무나 획일적이라는 것, 그리고 대상에 따라 이를 추구할 것이 지나치게 강요되거나 억압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이 사회의 일원인지라, 오랜 시간동안 나에게 세뇌된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전히 나는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화장에 이토록 목숨 거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하는 개인에게 “싫으면 화장하지 말든가”라는 말로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것은, 그것이 ‘선택’의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는 자들의 권력을, 잔인하게, 드러낸다. 자기가 겪지 못했다고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화남’ 프로젝트에 동참하자.

-16 유경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