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빠띠
“알았니? 절대 다른 사람이 눈치 못채게 해야해. 아닌 것처럼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어디 더러워진 곳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봐야해. 혹시나 스커트에 묻지 않았는지 꼭 확인해야 한단다!” 엄마와 여선생님은 그렇게 시치미를 떼라고 강조하신다. 여자라면 뻔뻔스럽게 감출 줄 알아야한다. 숨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여자는 신비로운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여자는 허벅지, 13p)
위의 문단이 어떤 상황을 이야기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생리를 하면서 나는 혹시 생리혈이 옷에 묻지는 않았는지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거울을 보고, 친구에게 점검까지 받아야 확실히 안심이다. “그 정도의 조심성은 당연한 것 아니야?”혹은 “깔끔한 것은 좋은 거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길에서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났을 때를 떠올려보자. 남들 눈에 내 피가 보이게 될까봐 걱정되서 조마조마하며 온 신경을 집중하지는 않는다. 생리는 감쪽같이 숨겨져야하는 여성만의 비밀로 여겨져왔다.(티비에서 생리대 광고를 주의깊게 보면, ‘그날’, ‘비밀’이라는 메시지가 자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비밀일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또 해봐도 잘 모르겠다.
여자라서 특별히 요구되는 건 신비로운 어른이 되는 것 이외에도 많다. 나에게는 친오빠가 두 명 있다. 부모님께서 ‘여자가 김치 정도는 담글 수 있어야한다’며 김치담는 법을 배우라고 했을 때에, 그 이유가 왜 여자라서인지 그리고 왜 오빠들에게는 같은 말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밤에 잘 때 방문을 꼭 걸어잠그고 자라고 했을 때에도, 왜 오빠들한테 동생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 않고, 나에게 방문을 걸어잠그고 자라고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남자에게도 남자라서 특별히 요구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이러한 사회(더 좁게 말하면 부모님)가 요구하는 역할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경우를 문제삼고 싶을 뿐이다.
“남자아이가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나중에 큰 일 못해요.” 엄마 본인은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대학에 들어가 일류회사에 근무하는 것? 임원이 되는 것?… 대항해시대는 이미 끝났다. 큰 일을 여자가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 수업에 대한 구별이 생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갓난 아기처럼 손이 많이 가는 남자가 있다. 나는 아무리 귀여워도 이렇게 바보같은 남자는 사절이다. 빨래 하나 못하고 요리 또한 못해서 아내가 없으면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주린 배와 분노를 부여잡으며 꾹 참는 것밖에 못하는 남자. 이런 남자는 무능한 바보라고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 없으면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말하는 여자도 똑같은 존재다. 남자 없으면 외로워서 못산다고? 그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남자가 벌어다주는 돈이 아니면 못산다고 하는 여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자기힘으로 먹고 사는 것 또한 인간이 해야할 뒷마무리일지도 모른다. (여자는 허벅지, 260p)
우리 친할아버지는 70세가 넘어서 가스렌지 켜는 법을 겨우 배우셨고, 아버지는 60세가 다 되어서야 설거지라는 것을 해보셨다. 오빠들은 대학시절 자취를 한 덕분에 빨래, 청소, 설거지를 비롯해 라면도 끓이고, 심지어 계란 후라이도 할 줄 안다. 대를 거듭할 수록 눈에 띄는 발전이 있으니 희망적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쉽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수십 가지인데, 오빠들은 고작 몇 가지일 뿐이고, 우리 집안의 가정 교육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할머니는 학창시절 내가 공부하는 것을 보면 혼을 내셨다. 쓸데없이 여자가 공부하면 못 쓴다고, ‘출세한 남편 얻어서 사모님 소리 들으며 사는 게 최고의 삶’이라고 하셨다. 서울로 대학을 간다고 할 때에도 할머니는 “객지에서 괜한 고생말고, 어릴 때 시집가서 애 낳고 그렇게 살아라”라고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신다며 넘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바로 우리 집 어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어른들의 뜻처럼 나는 요리와 살림에 관심이 많지만, 직장생활에 잘 맞지 않는, 꽤나 보수적인(그렇지만 한편 개방적이고자하는 욕구를 지녀 늘상 가치관에 혼란을 겪는) 어른으로 자랐고, 오빠들은 요리나 살림에는 영 소질이 없고, 힘든 것을 남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 빡빡한 직장 생활도 잘 견뎌내는 어른으로 자랐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이러한 가정에서 자랐고, 성별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남녀역할에 대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은 생각보다 나를 옭아매고 있고, 그런 이유로 인해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까지도 쳐다보게 된다.
이런 못난 모습을 자각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이 싫고 답답했지만, 하루 아침에 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미 시작된 고민을 외면하는 것도 나에게는 개운치 않았다.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그 고민은 머지 않은 미래에 몸집을 불려 다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에게서 ‘참하고 현명한 아가씨’에 대한 선망을 지워내고,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지만, 나는 당장에 그렇게 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고민을 깊게 해봤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커서 스트레스만 커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력의 시작으로 ‘이런 나라도 인정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다른 경험 혹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과의 차이를 발견하며 하나씩 나를 인정해보기로 했다. 빠띠는 그 과정을 조금 더 수월하게 도와주고 있다. 페미니즘에 관련한 기사나 칼럼을 찾아서 읽다가, 감명 깊은 글이 발견되면 빠띠에 링크를 공유한다. 다른 사람들과 그 자료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다. 내가 공유한 자료에 댓글이 많이 달리면, 더 흥미를 느끼게 되고 열심히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반대로 사람들이 공유해주는 자료들은 내가 미처 찾지 못한 내용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할 때에는 논의를 열어 질문을 던지기도하고, 쟁점이 떠오르면 투표를 열어 찬/반으로 의견을 주고 받기도 한다. 하루 십분 정도를 투자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 작은 노력이 내가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써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그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Originally published at minewater89.wordpress.com on May 30,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