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입니다. 이 한 문장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밝히고 헌법 전체를 규정짓게 되지요. 즉,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에 어긋난다면 대한민국의 그 어떠한 법률과 정책도 정당성을 상실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정체성을 집약한 중요한 이 문장을 자세히 뜯어보면 여기에는 공화제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둘 다 무척 어려운 단어입니다. 공화제부터 간단히 풀어 보자면 이는 다수가 내리는 공적 결정을 가지고 운영되는 체제입니다. 군주 한 사람에 의해 지배되는 군주제와 구별되지요. 공화제라 하더라도 다수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는데요. 자산, 군사력, 정치적 영향력 등을 지닌 소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권력이 집중된 과두적인 형태도 있지만, 여러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실현하는 민주적인 형태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미 아시다시피 후자를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주의 정치 형태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플라톤입니다. 그는 옳고 참된 지식이 아닌 시민들 의견에 기초를 두는 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체제는 결국 충동적이고 억지스러운 주장과 여론에 휩쓸릴 뿐이라 했죠. 그래서 그는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참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잘 교육된 사람만이 체제를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어느 대단한 지도자나 전문가 한 두 사람이 이런저런 편견과 대중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체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도 잘 먹히는 것은 그 한 예시라고 볼 수 있지요.

이런 플라톤의 주장은 민주주의 체제에 커다란 도전 과제입니다. 모든 시민이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운 민주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긴 하지만, 다양한 의견과 주장 그 자체가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한 정보가 없으면, 대게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당연하고 아주 합리적인 처신이지요. 그러나 이게 어쩌다 쏠리고 쏠려서 커다란 대중의 흐름으로 나타나면 자신이 뭔가 알고 있더라도 침묵하고 그냥 순순히 그 흐름에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회적 압박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교류하고 토론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그 의견이 확대 증폭되기도하고 더욱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개인과 집단 모두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위험을 자초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가 가진 이런 특징을 잘 이해하고 순순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겠죠. 이것이 빠띠가 가진 미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수십 년간 국내외 프로그래머들이 이룩한 훌륭한 문화와 규범을 골라 정치 플랫폼과 시스템으로 끌어오는 일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습니다. 탈중앙화된 느슨한 협업 체계, 형상 관리, 테스트 주도 개발, 리펙토링, 시스템적 사고, 선순환 등이 있는데요. 조만간 이 주제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 보려 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