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민주적인 세상이 있다면, 민주적인 세상이 있고, 민주적이지 않은 세상도 있고,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반만..민주적인 세상도 있을까요?
빠띠쿱의 역사가 내다보이는 빠띠쿱을 수식하는 단어와 슬로건
2018년 9월 말 빠띠쿱의 슬로건은 ‘민주적인 삶과 문화를 만듭니다.’에서 ‘더 민주적인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슬로건이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렸다면, 이번 슬로건은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하여’ 활동하는지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빠띠가 해왔던 모든 활동이 ‘더 민주적인 세상’을 위해 해온 것으로 귀결될 수 있죠. ‘더 민주적인 세상’을 상상해보노라면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평화롭게 사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세상 같습니다.
빠띠쿱 슬로건을 바라보며 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더’, ‘민주’에 한동안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민주주의’란 관념도 자로 재듯 측정할 수 있을까? *더 민주적인 세상이 있다면, 민주적인 세상, 민주적이지 않은 세상도 있고,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반만..민주적인 세상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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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민주주의가 뭐지?
사회, 시민, 플랫폼처럼 평소에 자주 쓰는 ‘민주주의’란 단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민주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며, 문자 그대로의 민주주의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 사전적 정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며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위키백과)
국민 #권력 #스스로 #사상 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들어가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democracy’의 어원도 다수의 사람(demos)에 의한 통치(kratos)입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democracy’의 핵심 원칙은 ‘self-rule’, 선거를 통해 통치자와 피지배층이 생기는 것이 아니며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고 합니다. (Comparative Government and Politics, 43쪽, Rod Hague and Martin Harrop) 어떠한 권리를 가진 행위자가 존재하고 그 행위자가 속한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권리를 행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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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띠쿱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광장, 물고기 떼, 돌탑, 프랙탈, 나’라는 요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열린 광장과 같은 일상 공간에서 개인으로 존재하다가 협력이 필요할 때 우리는 물고기 떼처럼 모입니다. 그렇게 누가 쌓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차곡차곡 쌓인 돌탑처럼 우리의 협력이 모여 사회의 작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곧 전체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민주주의를 우리 선조들이 축적해온 공공재를 관리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을 놓고 경합하는 상황을 정치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들이 공공재, 자원 운용과 활용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인터넷, 민주주의, 공공재 그리고 빠띠 — *시스 (Ohyeon)
이렇듯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기술이 손 시리면 장갑을 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듯 모두의 일상에 자연스럽고 친숙한 생필품처럼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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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민주주의’?
‘포스트’하면 떠오르는… 출처: 포스트
한창 ‘더’와 ‘민주’에 꽂혀(?)있을 때, ‘포스트 민주주의(‘Coping with Post-Democracy’)’라는 책을 소개받았습니다. 대의, 직접, 숙의, 자유, 참여 민주주의…. 여러 유형의 민주주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포스트-민주주의’라니.. 민주주의 덕후인 제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4년에 영국의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발간한 ‘Coping with Post-Democracy’라는 책에 ‘포스트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특별히 통계나 도표가 담겨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삶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예시로 언급되어 저자의 주장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민주주의 시기 이후 지루함, 좌절, 환멸이 발생한 상황, 강력한 소수 집단이 정치 시스템이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다수인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상황, 정치 계급이 대중의 요구를 관리하고 조작할 줄 알게 된 상황, 하향식 공공 캠페인을 진행하여 사람들이 투표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상황을 기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같은 상황은 비민주주의non-democracy의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가 민주주의의 포물선을 따라 도달하게 된 현시기를 묘사해준다. *(포스트 민주주의, 32쪽)
‘If we have only two concepts — democracy and un-democracy — we can not take a discussion about the health of democracy very far.’
‘포스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제도화된사회에 대부분 인류가 살고 있지만, 삶에서 민주주의의 순기능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효능감을 잃은 시기와 상황을 포착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가 오직 두 개념, 즉 민주주의와 비민주적인 개념만 갖고 있다면, 민주주의의 건강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포스트 민주주의, 32쪽)고 언급합니다. 원서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를 극복이나 전복해야 될(overcoming, reversing) 대상으로 보는게 아니라, 우리가 적절한 방안으로 마주하고 대처해야 할(coping with) 것으로 바라봅니다.
다국적 기업의 힘은 각국의 정부를 주무를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향상되면서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중요성을 약화했고, 이러한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가 포스트 민주주의를 낳았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수단을 마련하고, 정당과 시민 운동간 딜레마를 극복, (생태주의, 여성운동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읽으며 그동안 빠띠가 해왔던 활동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자가 빠띠쿱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참 기뻐하겠군(후훗) 하며..혼자 뿌듯해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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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측정해본다는 발칙한 상상
책을 덮고 나니 민주주의와 연관되는 것들이 참 많고, 앞으로 공부하고 탐험해야 할 세계를 계속해서 확장해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민주주의가 제도로 갖춰진 곳에 살면서도 느끼는 텁텁함과 갈증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니 너무 비관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조금 담담해지도 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처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각의 민주주의 상태를 측정하고 진단해보는 시도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소셜 임팩트 지표처럼 측정해놓은 시도가 있을지 궁금해 구글에 ‘democracy index’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역시 민주주의를 측정해본다는 발칙한 상상을 펼쳐본 사람들이 있었더군요.
출처ㅣDemocracy Index 2018,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The Economist의 자회사 EIU(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매년 **민주주의 인덱스(Democracy Index)**를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을 종합한 보고서가 올해 1월에 발행되었고, 165개 국가와 2개 영토의 민주주의를 지표화했습니다. EIU는 1.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2. 시민의 자유, 3. 행정부의 기능 4. 정치 참여 5. 정치 문화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라고 보고 각 분야를 통틀어 60개의 설문 문항을 만들었습니다. 각 설문 문항은 ‘1, 0.5, 0점’으로 채점하여, 점수가 높을수록 완전한 민주주의에 가까운 나라로 평가됩니다.
결함있는 민주주의 국가에 한국, 일본, 미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중 상위 1–3위는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웨덴이 차지했다. (출처ㅣDemocracy Index 2018,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그렇게 측정한 결과에 따라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혼합체제(hybrid regime)’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로 나뉩니다. 한국은 전세계 중 21위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평가되었습니다.
이어 보고서는 2018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 운동이 활발하게 나타난 것을 큰 특징으로 꼽았고, 70여 페이지에 걸친 보고서에 전세계 동향, 지역별, 5개 중요 요소별 이슈를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이리도 구체적으로 2018년을 분석한 보고서 뒤에서 발견한 열린 결말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전 세계적으로) 동의한것은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정의한다는 것 자체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고, 오늘날까지 활발한 토의가 오고 갑니다. (DEMOCRACY INDEX 2018: ME TOO?,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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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나의, 우리의 ‘더 민주적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왜 행복한 상상을 하면 초원 위를 노니는 유니콘과 무지개가 떠오를까요? (출처: Max Pixel)
유니콘이 뛰놀며 무지개가 뜬 동산처럼 어떤 청사진이 있을까요? 그래서 그 장면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궁극의 민주적 상태에 다다른 것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포스트 민주주의’를 사는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내일’의 단계를 만들어 내면 그 나아감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의 사전적 의미부터 하나둘 탐험하고 보니 다른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누가 정의를 내리고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민주주의를 누가 어떤 프리즘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거지 않을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정의하고 해석하는 것들이 OO의 민주주의, DD의 민주주의가 되는거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제가, 빠띠쿱에서, 여러분들이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으다 보면 어느덧 ‘더 민주적인 세상’에 가까워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열린 결말 속에서 허무함보다 되려 ‘더 민주적인 세상’을 내 손으로 가꿔봐야겠다는 뚝심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