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자림로 양옆으로 삼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도로 확장 과정에서 삼나무 수천 그루가 잘려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제주도는 주민숙원사업이며 교통난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러 시민은 숲길 보전방안이 우선돼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올해 9월 몇몇 뜻있는 시민들이 비자림로 공사 현장에서 문화제 행사를 진행하려 했었는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행사는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인근 마을주민들이 의도적으로 문화제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상황을 담은 기사와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한 분의 페이스북 글을 읽어 보시죠.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송당마을 주민들은 시민문화제 참여 시민들의 주차를 막기 위해 마을 소유의 거슨세미 오름 주차장 입구에 덤프트럭을 세워놓는 한편 금백조로 삼거리 갓길에도 10대 정도의 덤프트럭을 주차해 놓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행사장 바로 옆에 대형 덤프트럭과 트랙터 등을 세워놓고 시동을 켜놓았고 3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행사를 막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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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나무가 다 베어진 마당에 왜 남의 동네와 와서 간섭이냐” “내가 어릴 적 심은 나무를 베었다. 삼나무를 베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우리 동네 사람들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데 왜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와서 그러느냐”라고 시민문화제 참여 시민들에게 항의했다.
이에 대해 참여 시민들 역시 “비자림로가 송당주민들 만의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이렇게 길을 넓게 확장하지 않더라도 해결 가능하다”고 마을 주민들에게 응대했다.

출처: 제주환경일보 고현준 기자
원문: https://goo.gl/ptahhF

그런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옆에서 크게 뽕짝을 틀고 진행을 방해했으며 급기야 송당리 개발위원회 청년들과 일부 주민들이 무대로 난입해 사회자를 가로막고 여기저기서 욕을 해댔다. 가수가 노래 할 때는 앞을 가로막고 뒤에서 밀쳤다. 내 살다살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송당리 주민의 이야기도 듣는 시간을 가질 테니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막무가내였다. 소리 지르고 욕을 하며 위협을 하고 밀쳐댔다. 더 이상 문화제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출처: 김홍모님 페이스북
원문: https://goo.gl/Fvt3eU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아서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문화제 행사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 심리적 혹은 물리적인 강제가 있었다는 것만은 사실로 보입니다. 무엇이 이런 폭력 사태를 불러왔을까요? 대화와 공감, 토론과 숙의, 그리고 민주적인 절차와 원칙은 깡그리 무시되는 이런 충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여기서 김홍모님 페이스북 글에 나온 “개발위원회”란 단어를 주목해 보면 합니다. 현재 시골의 리와 동에 설치된 개발위원회란 게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깊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겪었던 일이 있어서 그 경험 위주로 이야길 풀어보겠습니다.

저는 개발위원회의 존재를 제주에 내려와서 처음 알게 되는데요. 그냥 있다는 것만 알았지 행정에 실제 참여할 기회가 없다 보니 그냥 마을의 한 조직인가 보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 오면서 아주 복잡한 문제에 얽히게 되는데요. 어느 날 마을 인근에 아스콘 공장 시설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고 마을회에서 승낙을 해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일부 주민이 동의 철회하고 좀 더 논의해 보자고 주장했지만, 마을회에서 철저히 무시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배후에는 개발위원회가 있었고요. 이후 우리 마을 공동체는 개발위원회를 따르는 측과 아닌 측으로 양분되고 갈등이 깊어지게 됩니다. 물론 좀 더 복잡한 양상이 있지만, 단순히 보면 그렇습니다.

이 개발위원회란 조직은 과연 무엇일까요? 근대화 진행되는 동안 국가는 마을을 포섭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습니다. 이 맥락에서 1960년대 중반 국가 시책을 농어촌 구석구석 일관성 있게 퍼트리기 위한 도구로 개발위원회가 고안되었습니다. 당시 마을에 있던 여러 조직을 정비하고 모든 개발사업을 주도할 목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실행 조직이며 나아가 마을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기능까지 수행하게 됩니다.

개발위원회는 이렇게 새마을 운동의 유물이기도 하지만 현재도 마을 단위의 각종 개발사업에 권한을 행사하는 마을 내 막강한 권력 기구입니다. 이 개발위원회가 군림하는 오늘날의 시골 모습은 어떤가요? 근대화 과정 동안 국가는 농사를 지으려면 돈이 필요하게 만들었고, 그 돈을 매개로 농민의 삶을 옥죄었습니다. 나아가 대부분의 농민 스스로가 종자 선택의 자유를 버리고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골라 살 수 있는 삶을 선택합니다. 아니면 도시로 떠나 버리거나요. 아기 울음소리가 시골 마을에서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십수 년도 전에 일입니다.

이렇게 자본의 침투가 깊숙이 진행된 현재 상황에서 몇몇 마을의 개발위원회가 건강한 의사결정 과정없이, 혹은 다양한 의견을 듣는 토론과 숙의 과정없이 행하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섭니다. 지역 개발주의자들이 이용하기 손쉬운 먹잇감이죠. 물론 이는 개발위원회만의 문제로 좁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획일적인 국가 통치 시도 과정 중에 마을의 전반적인 정치 구조가 취약해진 것이 문제이지요. 이 틈을 노리고 자본이 마을의 자원을 빼앗아 가는 상황입니다. 이를 계속 방관하면 안 그래도 쇠락해가는 시골 마을의 몰락 속도를 부추기는 꼴입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이 난개발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입니다. 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네요.

국가는 하루 빨리 마을을 통제하고 제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보다 많은 권력과 자원을 마을로 이양해야 합니다. 시민들은 마을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정책 수립과 자원 배분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모두 머리를 모아 지역 개발주의자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방책을 하루빨리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시민 자신 또한 개발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저는 민주주의 활동가로서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좀더 깊은 공부를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실제 실험과 행동으로 해결책을 찾아 보겠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뜻이 있는 분은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의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시도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