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릉 부르릉” 아침부터 우리 집 밭에는 굴착기가 한창 열일 중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풀더미를 이리저리 헤쳐놓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밭에는 무나 감자뿐이었다. 수없이 기계로 땅을 갈고 약을 치고 농약과 비료를 뿌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농부에게 필요한 작물이 길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용되던 땅 한편에 우리 식구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서툰 솜씨로 손수 짓다 보니 세월은 2년이 훌쩍 넘었고 800여 평 정도 되는 이 땅은 사람의 손길 없이 방치되어 갔다. 아니 방치라기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바뀌길 기대했다.

이 밭은 수십 년 동안 농부가 원하던 풀 이외에 다른 풀도 벌레도 용납하지 않던 땅이다. 집 짓는 몇 년 동안 별일 있겠나 싶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자연의 힘과 지구의 명령은 강력했고 기계와 사람의 힘으로 간신히 유지되던 우리 땅에 봉인되었던 풀씨며 벌레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땅을 장악해 나갔다.

잘 보면 깻잎과 고추가 자라고 있다. 찾아보시라!
잘 보면 깻잎과 고추가 자라고 있다. 찾아보시라!

우리가족이 그를 ‘양아치’라고 부르게 된 까닭은

그런데 땅을 그동안 너무 혹사했던 탓일까? 너무 이상하게도 달랑 몇 가지 종류의 풀만 너무도 많이 생겨났다. 숲이나 들판에서 보던 여러 풀이 섞인 자연스러운 그림이 아니었다. 이렇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풀이 몇 번 바뀌더니 시간이 흘러가면서 결국 억새와 조릿대, 그리고 이름 모르는 풀 하나가 밭을 점령해 버렸다. 요 이름 모를 풀의 이름을 우리 식구는 “양아치”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험한 이름 부르게 된 건 이유가 있다. 이 풀은 우리 식구에게 텃밭 할만한 땅 몇 평도 쉽사리 내주지 않는다. 동장군이 물러가고 땅이 녹을 만한 무렵 서툰 삽질로 삽자루 몇 개씩 부러트려 가면서 “양아치” 몰아내고 고추 몇 포기나 파 몇 단을 심었었다. 그러나 우리 식구가 잠시 어디 여행을 가거나 한 달 넘는 제주의 엽기적인 장마로 며칠 밭에 못 나가면 여지없다. 고추는 정말 녹아서 없어진 듯이 싹 사라지고 “양아치” 밭이 되어 있었다. 억새도, 조릿대도 만만치 않다. 둘 다 삽으로 뽑아내기는 어림도 없다. 번져가는 속도는 왜 이리 빠른지.

굴착기 등판!
굴착기 등판!

농부는 살리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민에 고민 끝에 결국 굴착기를 빌려왔다. 이게 왜 고민이 되는지 남들은 이해 못 할지도 모르겠다. 땅을 갈지 않고 화학 비료나 농약 없이 텃밭을 몇 년 해보니 어느 순간 체득하게 된 게 있다. 땅은 정말 살아 있다는 것. 그 안에는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다. 호미질 쟁기질 한 번 하면서도 나는 무수한 생명을 죽이게 된다는 것이다. 농부는 살리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생명을 죽여가서면서 내 식구의 삶을 이어가는 일이다. 이런 땅에 저 무거운 굴착기를 들인다고? 그 무지막지한 힘이 두렵고 무섭다. 굴착기가 휘젓고 간 땅을 며칠 있다 밟아 보았다. 너무나 딱딱하다. 땅의 기운이 죽은 게 느껴진다.

여기에 우리 식구는 2월 즈음 보리를 심을 것이다. 이제 다시 자연의 심판을 기다린다. 이번에는 억새나 “양아치” 말고 좀 유순한 풀로 대응해 주시길 지구에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