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데이터 실험실> 가을스프린트 항해기
<공익데이터 실험실> 데이터 활동가가 관심이 있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데이터 전문가인 협력가들이 프로젝트 자문과 협업을 합니다. 시민이 원하는 공익데이터를 찾고 활용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공유합니다. 빠띠의 <공익데이터 실험실>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불편과 궁금증을 함께 해결해봅니다.
🌊🌊 <공익데이터 실험실> 가을스프린트 항해중 🌊🌊
자신이 가진 사회문제와 고민으로 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마치 대항해시대 바다의 배처럼 데이터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아주 격동적인 가을동안 이들의 항해 기록을 공유합니다.
모두에게 문턱 없는 통합놀이터를 꿈꾸다_그린북 프로젝트
재난 위기 속, 이웃의 끼니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서_WAF 프로젝트
쓰레기 덕후의 쓰레기 덕질 모험기_내가 버린 쓰레기 어디로 갈까 프로젝트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위한 2020년 가을의 전설_크롤 앤 스티치 프로젝트
'쓰레기 덕후'의 '쓰레기 덕질' 모험기
모험의 시작!!
“우리 동네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광명시 주민 최지 님이 처음에 품은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최지 님의 ‘쓰레기 덕질’은 우리 동네 쓰레기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떤 배경지식도 없이 호기심만으로 시작된 덕질 속에서 광명시의 쓰레기와 관련된 데이터나 이슈들을 하나둘 발굴했습니다. ‘광명시 재활용품 수집 노인 및 장애인 지원조례 제정안 입법예고’, ‘광명시 재활용품 선별장 민간위탁 과업지시’, ‘광명시 재활용품 선별장 현황 자료’ 등 조금은 낯선 말들과 만나다보면, 광명시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고, 과거에 방문했던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쓰레기무단투기 CCTV 설치현황 같은 자료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동심원이 퍼져나가듯 쓰레기와 관련된 지식과 관심사도 점차 넓어져 갔습니다. 관심의 크기가 커지다보면 그 관심이 일상의 실천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세대 주택이 많은 동네에서 분리수거 시스템이 사실상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청에 민원도 넣고, 살고 있는 빌라의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분리수거 방법을 알리고픈 마음에 용기를 내어 안내문도 작성해 보았습니다.
하나하나 더듬어가던 쓰레기 덕질이 어느덧 큰 성과를 만나게 됩니다. 광명시에서 매년 발간하는 환경백서를 찾게 된 것이죠. 광명시 환경백서는 자연환경 보전, 대기오염 및 대기배출시설, 수질오염 및 상하수도 관리, 폐기물 관리, 소음 및 진동과 석면 안전관리 등 광명시의 환경행정과 관련된 넓은 주제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문서입니다. 특히 관심사인 폐기물과 관련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실태가 정리되어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배출되고 어떤 업체들이 그 쓰레기들을 수거하며, 그중 얼마나 소각되거나 매립되는지, 대강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가을 스프린트와 만나다
쓰레기가 운반되는 큰 흐름을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크게 일반 생활폐기물, 음식물쓰레기, 재활용품, 그리고 대형폐기물로 분류됩니다. 일반 생활폐기물은 자원회수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지역은 자원회수시설로, 그렇지 않은 자치구는 중간집하장을 거치거나 혹은 곧바로 매립지로 운반되어 처리됩니다. 음식물쓰레기의 경우엔 처리업체에 위탁 처리하여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재활용품은 재분류하여 재활용 업체 등에 매각하고, 폐스티로폼은 건축자재의 원료로 재생산 판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형폐기물의 경우 목재류는 파쇄처리하고, 철재 등 금속류는 재활용합니다.
광명시에서 많은 정보들을 공개하고 있었지만 우리 동네 쓰레기의 흐름을 확실하게 속속들이 파악하기엔 빈 구멍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빈 구멍을 정보공개청구로 메워볼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서울시와 경기도 차원에서 쓰레기의 흐름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이 흐름을 지도상에 시각화해보면 어떨까? 쓰레기 덕질 과정에서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며 크기를 키워가던 어느 날 빠띠의 공익데이터 실험실 가을 스프린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면서 서울시 25개구를 대상으로 정하여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정보공개청구도 도전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공개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경로를 잘 몰랐기에, 서울시의 각 자치구별로 데이터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자치구별로 배출된 생활폐기물, 음식물쓰레기, 재활용품 등이 어떤 장소를 거쳐가는지, 자원순환시설, 재활용 선별장 등 어떤 장소에 모여드는지, 쓰레기들이 해당 장소들에 얼마나 모여드는지 확인해보려 했습니다. 게다가 쓰레기 수거와 처리를 담당하는 업체도 각각 달랐고, 이들 업체에 대한 정보는 자치구별로 따로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이 과정에서 <공익데이터 실험실>의 자문회의에 참여한 전문가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지자체별 쓰레기 수거 업체의 수거 ‘권역’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준비에도 도움을 받았고, 관련된 정보의 소스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각각의 데이터들의 단위가 들쭉날쭉하고 출처도 달랐어요. 이 데이터들의 수치가 정말 확실한 건지도 분명치 않았고, 연도별로 데이터들을 정리해보면 어떤 그림이 보일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쓰레기와 관련된 데이터들의 바다를 헤엄치다보니 각각의 데이터들의 출처를 기록하는 걸 놓쳐서 곤란해지기도 했어요. 데이터의 출처 기록이라는 기본 사항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가급적 단위가 통일된 하나의 소스를 중심으로 활용하고, 출처와 항목을 자세하게 기록하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공익데이터 실험실>의 자문을 통해 서울시의 각종 정보를 모아둔 서울 공공데이터 포털이 있다는 것, 또 환경부의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서도 폐기물 통계정보가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데이터를 한데 모아놓고 정리한 곳이 있는지 몰라서 자치구별로 데이터를 보려고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데이터를 항해하는 조타수의 임무
서울시 공공데이터 포털과 자원순환정보시스템 사이에는 데이터들의 항목과 값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울시 공공데이터 포털의 경우, 음식물류 폐기물의 데이터 값은 사업장+가정용이 합산되어 있고 가정에서 배출된 경우만 따로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대신 처리 방법에 있어 재활용 항목이 사료화, 퇴비화로 세분화되어 있었고요. 반면 자원순환정보시스템의 경우에는 사업장과 가정용을 구분해놓았지만 가정용 폐기물의 처리 방법이 매립, 소각, 재활용으로만 구분되어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처음에는 처리 방법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서울시 공공데이터 포털의 데이터들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폐기물 전체 배출량과 오차가 너무 크게 나타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공공데이터 포털의 데이터들은 서울시의 자치구 별로 축적된 데이터를 한데 모은 거인데, 각 자치구별로 데이터의 가공방식이 다르고 출처까지 불명확했습니다. 그래서 자원순환관리시스템의 데이터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자원순환관리시스템의 폐기물 통계정보는 하나의 소스로만 데이터가 만들어져 있어 단위가 통일된 편이었고, 데이터 수집 절차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 상대적으로 더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됐습니다.
데이터의 바다 속에 있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곤 합니다. 혼자 작업을 하다가도 혹은 자문회의에서 전문가 분들과 의견을 쏟아내다 보면 흥미롭고 생각 못한 아이디어들이 생겨서 더 다양하게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량도 시간도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방향성을 잡고 옆길로 빠지려는 자신을 붙잡곤 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데이터들이 생기면 아무래도 욕심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심을 잡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싶었는지 확실하게 설정하고서 프로젝트 과정에서 계속 상기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문회의 과정에서는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기 쉬우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자신이 중심을 분명히 잡아야 했습니다.
쓰레기의 흐름을 보고자 했기 때문에 자원순환관리시스템의 폐기물 통계정보를 기본으로 해서 쓰레기의 범주별 데이터들을 모았습니다. 통일성을 가지는 데이터가 필요했기에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보다는 연도와 단위가 통일될 수 있는 수준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했습니다. 데이터들을 개별개별로 따로 모을 때는 몰랐지만,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체계화된 데이터들을 정리하면서 기존에 찾고자 했던 데이터들이 기본적으로 다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오류나 구멍이 있겠지만,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이미 있는 데이터들을 정리하고 항목에 설명을 덧붙이는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공무원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
쓰레기수거 업체의 수거 권역을 비롯해 필요한 데이터과 프로젝트 과정에서 생겨난 의문들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도 진행했습니다. 우선 진행한 건 권역별 수거 업체와 관련된 정보였습니다. 처음엔 25개 자치구에 모든 자료를 다 신청했지만 이후 청구 내용이 너무 모호하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의 전화가 수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가선 너무 무모하게 많이 신청했다 싶어 여러 청구들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청구 내용을 더 상세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떤 필요와 맥락에서 해당 정보를 공개청구하는지 모른 채 공무원은 정보공개청구 내용에 적시된 텍스트로만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공무원이 혼란스러워 하지 않도록 공무원의 입장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정보공개청구에 엑셀파일을 첨부했는데, 해당 파일의 정보 목록과 정보공개청구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전화해 물어보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요구하다보니 청구 내용이 모호해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정보들을 요구하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것, 모르는 것만 콕 찝어서 정보공개청구하거나 담당 공무원에게 질의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이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더라도 당황해하지 말고 잘 대응하면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공무원도 정보공개청구에 잘 응답하기 위해서 연락을 하는 것이니까요. 만약 공공데이터에 대해 의문사항이 생기거나 알고 싶은 정보가 아주 구체적이라면, 어떤 과에서 누가 해당 정보를 담당하는지 확인하여 전화를 해보는 것도 편리했습니다. 직접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었습니다.
모험의 끝은 베드 엔딩?
그동안 전문가들은 데이터나 공공정보와 관련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든 의문들을 풀기 위해선 쓰레기 분야의 전문가를 만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원통계정보시스템의 데이터에서 폐기물의 배출량과 처리량이 동일한 값으로 작성되어 있는데, 이 데이터가 맞다면 쓰레기 매립이나 수출이 일어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분야의 전문가, 이른바 ‘쓰레기박사’로 불리는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났고, 그러자 그동안의 프로젝트가 위기에 빠져 버렸습니다.
쓰레기 데이터는 지자체가 각 업체로부터 받은 숫자를 자원순환관리시스템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파트, 사업장, 음식점 등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여러 이유로 지자체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령 아파트나 음식점 등은 직접 업체와 계약을 하고 있는데다 쓰레기를 대량으로 수거하는 경우 누락된 정보가 많아 지자체가 이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지요. 그러니 처리량과 배출량을 일치시켜서 계산하게 되는 겁니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데이터와 달리 실제 현실은 시스템에 구멍들이 슝슝 뚫려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구멍들이 있었습니다. 데이터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100% 재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건 실제 업체에서 사료화, 퇴비화한 음식물쓰레기의 수치가 아니라 사실상 업체에 운송된 쓰레기의 양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실제 퇴비화, 사료화된 정도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또, 가연성/불가연성 쓰레기 항목의 수치 역시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었습니다. 쓰레기 전체가 아니 일부만 샘플링을 해서 계산한 것이라 임의적으로 설정된 수치였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왔던 데이터들이 쉽게 말해 다 ‘모래성’이었던 것입니다. 홍수열 소장은 “잘못 발을 들여 놓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좀 더 일찍 방향을 틀어서 다릍 항해가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쓰레기 분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맨 땅에 헤딩’했던 최지 님의 항해는, 그렇게 최종장을 앞두고 좌초될 위기에 빠져 버렸습니다. 숫자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숫자 너머의 맥락과 배경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뼈아픈 교훈이 남았습니다.
데이터들을 꼼꼼히 모으고 정리해 내 집에서 배출된 쓰레기의 모험을 시각화해보고 싶다던 최지 님의 프로젝트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동안 해오던 일들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고 무의미해지는 걸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체계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쓰레기 데이터의 문제점들을 정리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수많은 데이터들에 큰 허점이 있다는 걸 안 이상, 항해는 끝이 아니라 다음번의 모험을 준비하기 위한 전 단계가 될 것입니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위한 2020년 가을의 전설, 크롤 & 스티치
셰도우핀즈는 1998년부터 2020년 올해까지 발생한 스토킹 사건들 중 온라인 뉴스에 게재 된 기사를 수집했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여러 언론사에서 중복 게시한 것을 포함해 총 1만 6천 건입니다. 크롤링(Crawling)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3명의 멤버가 기사를 읽고 분석합니다. 특징을 골라내고 문제를 집어냅니다. 스토킹에 대한 공통된 그러나 잘못된 시각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것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스토킹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에서 스토킹 처벌법 부재로 인한 문제, 스토킹 처벌법의 강력한 필요성을 엮어냅니다. 프로젝트 크롤&스티치(Crawl and Stitch)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파고들수록 왜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본 법안이 제정되지 못한 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측가능한 부분도 있습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이 최초 발의된지 21년이 지난 지금에도 말입니다. 물론 그 시간동안 많은 움직임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역대 최다인 6건의 스토킹 처벌법이 발의되었습니다. 보수 야당에서도 이 중 2건을 발의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보면 입법이 한 발짝 앞에 다가온 것만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입법이 되면 어떡하지?!’같은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대에도 금방 제정될 것 같았던 법이 스토킹 정의에 대한 법무부와 대법원의 지난한 줄다리기로 인해 회기를 넘겨 폐기되고 말았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스토킹 정의’ 문제와 스토킹을 바라보는 시민들과 미디어의 인식 등이 정리되거나 개선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셰도우핀즈는 프로젝트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스토킹 처벌법의 필요성을 더 널리 알려 함께 행동하길 촉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품고 생계와 학업과 프로젝트를 병행중입니다. 어마어마한 데이터와 부족한 시간, 하고 싶은 것 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또한 해야 할 일이지요. 균형점의 양쪽에 큰 목표 두 가지가 있습니다.
21년 동안 온라인에 게재된 스토킹 관련 기사들을 모두 수집하여 사건의 특징 또는 사건의 묘사에 따라 주요 키워드를 부여하고 우리 사회가 스토킹 사건을 읽어 온 방법을 비평하고 읽어야 하는 맥락을 제시
21년 간 강력한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지 못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피해자의 보복, 중범죄로 이어진 가해자의 행위 등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며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을 위한 강력한 시민행동을 촉구
둘 중 무엇이 더 중하고 덜 중하지 않습니다. 함께 가야 하는 것이지요. 자극적이거나 나이브한 시각을 개선하고, 스토킹이 중범죄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셰도우핀즈가 가진 문제의식과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두 목표에 대해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Action #0_스토킹이 그저 짝사랑, 순애보라고?
셰도우핀즈는 공익데이터 실험실 가을스프린트에 합류하기 전부터 거의 1년 가까이 스토킹을 파고 있었습니다. 1998년부터 올해까지 ‘스토킹’이 키워드로 포함된 모든 언론 기사를 박박 긁어 모으고 읽었습니다. 빅카인즈와 네이버에서 수집을 했는데, 두 곳은 제공되는 언론사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수집된 기사 성격도 다소 달랐습니다. 가령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들도 다수 포함된 네이버 뉴스는 선정적인 타이틀과 내용의 기사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습니다. 범죄의 중대성과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가해자의 행위를 포장하거나,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등 불필요한 선정적인 정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이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진 스토킹 인식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21년 동안 법안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기만 한 게 아닐까요?
스토킹이 범죄라는 인식이 낮던 시절에는 이를 해프닝으로 접근하는 형태가 많았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보고 싶어서’ 혹은 ‘좋아해서’ 접근한 것이라는 등 순애보적 행위로 표현되었지요. 이런 인식을 반영한 듯 입법 초기 시절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스토킹 행위가 구애적 행동일수도 있어 범죄 행위로 단정지을 수 없으며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는 2013년 경범죄 처벌법에 신설된 지속적 괴롭힘 규정이나 폭행, 협박 등 그 외 행위가 더해질 경우 형법과 특별법 등의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인해 입법에 제약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스토킹은 절대 낭만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8만원짜리 경범죄도 아니지요. 스토킹 사건이라는 표제를 달지 않지만 살인사건 등 중범죄 사건의 시작이 스토킹이었던 경우들이 있습니다. 안인득 사건(2019년)이나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2018)도 스토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신고를 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이 친고죄 규정에 따라 직접 신고하고 분명한 거부의사를 밝혔음과 3회 이상의 횟수 또는 공포나 불안감을 끼치는 행위에 대해 직접 입증해야만 수사가 개시되고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봤자 8만원의 벌금형일뿐 협박, 모욕 그외 폭력 행위 등이 동반될 경우에야 더욱 강력한 처벌을 검토할 수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뒤에야 스토킹이라는 전조현상이 있었음을 파악하고 알려지지요. 방지할 수 있었지만 방지하지 못한 것, 더 큰 사건이 벌어져야 심각성을 인지하는 것, 이것이 현행법 체계이자 피해자들이 놓인 현실입니다. 제대로 된 법이 없으니 제대로 된 통계도 없습니다. 경찰청은 지난해 583건으로 스토킹 범죄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으나, 어떻게 처벌되고 처리되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유일하게 스토킹 사건을 확인할 수 있는 언론기사도 비슷합니다. 대부분 사건의 발생만을 자극적으로 바라보고 있지요.
Action #1_1998~2020 수만건의 스토킹 기사 라벨링
그래서 크롤&스티치는 1만건이 넘는 기사를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 미디어의 스토킹 사건에 대한 시각을 분류해서 보여주고자 합니다. 스토킹 관련 기사의 큰 특징들을 보며 셰도우핀즈가 우선순위로 정한 라벨링 키워드는 5가지 입니다.
가해자 서사 강화
여성 피해자 성적대상화
여성 가해자 성적대상화
보복범죄
전조현상
(그 외)
이들은 언론 기사에 드러난 ‘서사’에 주목했습니다. 미디어가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 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즉 기자나 언론이 만들어낸 ‘서사’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자극적인 관심거리로써 스토킹을 치부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셰도우핀즈는 심각한 범죄 사건이 단순한 소비 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키워드로 기사를 분류하는 일은 <스토킹 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현실,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고통받으며 보복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현실 그 와중에 발전된 기술력과 함께 더욱 다종다양한 형태로 스토킹 범죄가 진화하고 확산하는 현실>의 맥락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읽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미디어가 단순히 바라보기만 했거나 바라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을 도려내고 드러냄으로써 문제를 뾰족하게 다듬는 과정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시민과 언론, 정치인을 비롯한 정책 입안자들에게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고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며 입법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스토킹 정의에 대한 합의이지요.
스토킹 범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스토킹 처벌법 도입에 한발짝 더 다가갔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스토킹 정의에 관해 법무부와 대법원의 견고한 입장 차이가 회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어 결국 무산되고 말았지요. 2019년 법무부는 스토킹을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없이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범죄의 유형을 열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스토킹 범죄 유형이 워낙 광범위하고 기술발전과 함께 다양하게 진화하면서 ‘그 밖의 행위’와 같은 조항을 추가해 해석의 여지를 둬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스토킹범죄를 획일적으로 정의하는데 난색을 표했습니다. 포괄적인 해석으로 범죄가 아님에도 처벌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이러한 이견으로 스토킹 처벌법 제정은 지연되었고, 스토킹 범죄는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고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 부재가 가져온 비극
스토킹 사건은 입증요건이 까다롭고 처벌 수위가 낮아 오히려 보복의 두려움으로 피해자들은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경찰은 스토킹과 같은 생활주변 폭력은 피해자들이 보복 우려, 가해자와의 관계 등으로 신고를 포기하는 등 미신고 사례가 많을 것으로 파악하고 집중 단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제대로 신고를 못 한 피해자들과 신고를 해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례들이 생겨납니다. 경찰이나 사법부의 안일한 대응과 처벌이 스토킹의 지속적인 재발과 살인 등의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셰도우핀즈는 언론 기사와 판결문을 검토하여 경찰의 형식적인 수사나 재판부의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와의 합의 등’에 따른 선처 이후 스토킹이 계속되거나 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진 사례들을 확인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 살해와 가해자의 자살 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안인득 사건과 같이 심각한 사회적 비극을 낳기도 했지요.
물론 이를 경찰과 사법부의 직무 태만이나 너그러움이 아니라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이는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행위이자, 자신이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토킹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사적 복수가 일어나고 마는 사회에서 우리는 법 안팎에서의 제대로 된 보호장치와 가해자의 범죄를 강력하게 구속할 수 있는 제도를 진실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Action #2_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올해 21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시민 대상 성평등 입법과제를 조사했습니다. 조사 응답자 평균 94.4%가 스토킹 방지법 제정에 동의했습니다. 디지털성범죄 대응 특별법 제정도 94.5% 동의했습니다. 즉 국민 대다수가 젠더 기반 폭력 대응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행동할 때입니다.
다른 나라에도 스토킹 처벌법이 있나요?
그럼 해외에서는 스토킹을 어떻게 처벌하고 있을까요? 스토킹 관련 법을 따로 제정하고 별도의 수사팀을 두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셰도우핀즈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의 관련법과 처벌사례를 분석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1990년 가장 먼저 스토킹 처벌법 “Penal Code” 제정
- 최소 6개월에서 최대 5년까지 징역형을 규정하고, 피해자가 18세 미만이거나 가해자 연령이 5세 이상 연상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합니다.
- 현재는 미국 모든 주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시간주는 ‘스토킹’과 ‘가중적 스토킹’을 구분해 처벌하고 있습니다. ‘가중적 스토킹’은 무기를 소지하거나 신체 상해를 포함한 위험한 행위가 수반될 경우로 중죄로 취급합니다.
- 그리고 LA 경찰청에는 1989년 세계 최초로 ‘Threat Management Unit’라는 이름의 스토킹 대응팀을 구성했습니다. 내쉬빌 경찰청에서도 가정폭력과 스토킹을 담당하는 전담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영국 1997년 “괴롭힘 방지법(Protection from Harassment Act)” 제정
- 이는 51주 이하의 금고형 또는 표준등급 5등급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하거나 병과하도록 했습니다.
- 그리고 지난 2019년 스토킹방지법을 입법화했습니다. 이는괴롭힘 방지법이 규정하는 범죄행위로서 스토킹 처벌뿐만 아니라 스토킹보호명령 또는 임시스토킹보호명령을 위반하는 경우에도 12개월 이하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이 각각 또는 병과되는 약식처벌과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각각 또는 병과하는 정식처벌을 규정합니다. 즉 스토킹의 위험이 심화되기 이전에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정된 법입니다.
일본 2000년 “스토커 행위 등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
- 이는 경고조치 또는 금지명령 등의 금지조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금지명령을 위반해 스토킹을 할 경우 징역 2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엔 이하에 처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따라다니기’라는 개념으로 스토킹의 행위유형을 8가지로 규율하고 있습니다.
독일 2007년 형법 제238조에 스토킹 행위에 관한 형사처벌 규정 도입
-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으며, 스토킹 행위를 통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또는 피해자와 가까운 자의 사망을 야기하는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자유형으로 법정형이 가중처벌 됩니다.
- 그리고 스토킹 행위의 소추가 공익과 연관이 있을 때는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추할 수 있는 상대적 친고죄를 규정합니다.
- 독일의 스토킹에 대한 최초 형법적 대응은 2001년에 제정된 “폭력행위 및 의사에 반한 접촉 행위에 대한 민사적 보호에 관한 법률(Gesetz zum zivilrechtlichen Schutz vor Gewalttaten und Nachstellungen)”입니다. 이는 법원의 특정한 집행명령을 위한반 자에게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입법이 되어야 할 때
📌 우리 사회가 스토킹 사건을 읽어 온 방법을 비평하고 읽어야 하는 맥락을 제시
📌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며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을 위한 강력한 시민행동을 촉구
셰도우핀즈 크롤&스티치 프로젝트가 담고 있는 위 두 가지 중 공익데이터 실험실 가을 스프린트에서는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할 수 있도록 지금의 활동들을 모아 시민들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개발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셰도우핀즈의 크롤&스티치 프로젝트는 지난했으나 멈출 수 없었던 스토킹 처벌법 도입을 위한 노력의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안타깝게 스러져간 피해자들의 이야기, 우리들이 희망과 바람을 넘어서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담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미디어의 스토킹에 대한 시선을 새로 고침 하는 것은 이후에도 함께 이어질 거예요. 입법을 위한 노력이 지금껏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셰도우핀즈의 크롤&스티치도 우리 사회의 스토킹을 바라보는 시각이 개선될 때까지, 그리고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될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가을이 지나도 계속될 이들의 이야기를 응원하며 한 명의 시민으로서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참고 자료]
권병석,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앞두고 생활범죄 근절 총력, 2019.10.01. 파이낸셜뉴스
김민이. 스토킹 관련 독일, 영국, 일본 입법례. 2020. 국회도서관.
김효정, 21년간 발의만 12번...스토킹 처벌법 아직도 국회 문턱에, 2020.05.31. 조선일보
박희영. 독일의 스토킹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2007. 법제자료.
부정석, 왜 쫓아다녀 스토커 묶어놓고 살해 20대 여성 구속, 2016.01.18, MBC뉴스
염유섭, ‘범죄 정의’ 못 내리는 사이 '스토킹'은 늘고 있다, 2019.04.16. 세계일보
글 | 콘텐츠 매니저 조현진, 최성용
편집 | 빠띠 공익데이터팀, 콘텐츠 매니저 조현진, 최성용
디자인 | 콘텐츠 디자이너 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