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자 인터뷰]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활동가를 만나다

본 글은 서울잡스(https://seouljobs.net/) 에서 진행한 '현직자 인터뷰' 내용입니다.

커뮤니티 관련 활동을 하는 중인 트리(사진 제공 트리)

‘민주주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거대한 개념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 같은데 일상에서 딱히 와닿지 않는다. 선거가 있거나 큰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 민주주의가 ‘나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면?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빠띠 활동가를 만나 물어봤다. 빠띠에선 무슨 일을 하는지. ‘더 민주적인 세상’이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취재, 글 김민준 기자


자기소개 및 업무소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지금 하고 계신 업무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서 활동하는 ‘트리’ 오동운이라고 합니다. 빠띠는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모인 협동조합입니다.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 같은데, 제가 활동하는 팀에서는 커뮤니티와 캠페인을 통해 변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트리라는 닉네임에는 어떤 뜻이 있나요?
빠띠에서는 서로가 좀 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본인이 원하는 닉네임을 써요. ‘트리’는 말 그대로 나무라는 뜻인데, 제가 원하는 모습에 부합하는 닉네임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가 하는 일들이 지금 당장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거든요.

빠띠 이전, ‘트리’가 되어가는 과정

대학에서는 국어교육을 전공했다가 경제학으로 복수전공을 하셨다고요. 진로를 바꾸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엔 아이들의 진로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까, 세상의 문제들은 학교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학생일 때는 졸업만 하면 그때 생각했던 문제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죠. 오히려 문제는 더 많아지고 고민은 깊어지게 되는 상황에서, 과연 학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온당한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더 많은 문제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에 경제로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모두가 행복할 방법이 뭘까를 고민하는데, 주변에서는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라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일까 고민해보니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뜻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내가 좀 더 경제를 공부해본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그 ‘불가능함’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갑자기 방향성을 바꾸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요?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5개월 동안 중남미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게 방향 전환의 불안함을 내려놓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여행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있고 꼭 정해진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2019년까지 교육 관련 활동들을 계속했던데, 이유가 뭔가요?
제가 방향성을 바꾼 건 교육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관점이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보다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보고 싶은 거지,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경험했던 것들이 별로였다거나, 저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들거든요. 제 삶 속에서 교육 혹은 국어교육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을 달리하고자 할 뿐인 거죠. 그래서 대안 교육과 관련한 활동을 하거나 교육혁신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고 공부하는 등의 활동을 했어요.

줌(Zoom)을 통해 빠띠 워크숍을 하는 트리(사진 제공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빠띠에서 ‘트리’가 되다

빠띠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보통 빠띠는 빠띠의 비전과 미션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활동가를 모아요. 저 역시 빠띠의 방향성이나 활동에 공감해서 먼저 연락을 드렸어요. 물론 그 이전에도 빠띠 창립자인 시스(권오현)님을 알고 있긴 했습니다. 작년에 참여한 정책 제안 공모전에서 뵈었었거든요. 그때 인연이 되어서 이후에 만나 뵙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고,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동운님이 공감한 ‘빠띠의 비전’이란 뭘까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보면, 이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 반대편에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요. 그들은 다수가 아니고 소위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기도 하죠. 이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이런 고민을 빠띠 커뮤니티 팀에서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커뮤니티 팀에서는 무엇을 하나요?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하나의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런 활동을 해보자, 이런 제안을 해보자 하는 판을 기획하는 일을 해요. 그분들이 더 목소리를 잘 낼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이렇게 관심 있는 이슈를 기반으로 모이는 것을 돕기도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조직이 더 원활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고 할 때 빠띠의 커뮤니티 플랫폼을 제공하는 때도 있고요.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기업이지만, 공익적인 가치와 책임이 강조된 기업인 셈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거기 돈은 벌 수 있는 곳이야?’, ‘너 먹고는 살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좋은 일’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 희생을 전제로 하고, 그로 인해 배가 고프기 마련이고 남들에게 후원을 받아야 하는,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하나의 ‘일’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봐요.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나타나는 셈이군요.
그렇죠. 저희가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플랫폼을 제공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게 끝이야?’라고 생각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이용하면서 효용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로 이어지는 것이거든요. 저희가 제공하는 모델들이 실질적인 효용과 효능감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서요.

빠띠에서 하셨던 활동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각 청소년 팀들이 주제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진행하는 청소년공익커뮤니티 ‘유스펀치’를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운영 및 기획하고 있는데,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공익적인 활동이란 결국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어떻게 하면 더 잘 알리고 잘 퍼트릴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제가 속한 팀이 옆에서 도움을 준 셈인 거죠.

활동들을 돌이켜 보면, 당사자 혹은 시민들이 이슈를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이들이 이슈를 주도하는 일은 왜 중요하다고 보나요?
사실 ‘시민’은 결국 우리 모두잖아요.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편하게 낼 수 있고,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회적 논의에 다수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능력이 없거나 생각이 없기 때문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이들이 목소리를 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을 많이 하셨을 텐데, 올 한 해 코로나19로 인한 업무에 지장은 없었나요?
빠띠는 설립되었을 때부터, 원격근무를 했어요. 사무실이 있긴 있지만, 원격근무가 기본입니다. 오프라인 행사들이 취소되곤 해서 아예 업무에 지장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지만, 그래도 다른 기업들에 비해서는 덜 지장을 받긴 했어요.

빠띠는 온라인 상에서의 협업을 중시하는 조직 같습니다.
정확히는, 서로를 수평적인 관계에서 신뢰하고 있다면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에 가까워요. 구태여 사무실까지 나와서 일하는 걸 감시할 필요가 없는 거죠. 필요한 경우에는 당연히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리듬 하에서, 원하는 공간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게 빠띠라는 조직의 장점인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조직문화는 저희가 하는 활동과도 맥이 닿아 있는데, 시민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함께 캠페인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요. ‘시민들이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런 일을 한 번도 안 해봤을 텐데.’ 그러나 저희는 다 같이 모이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믿는 ‘신뢰의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건 시민들의 힘을 믿는 것과도 연결되는 거죠.

받는 급여에 비해서 업무의 비중은 어떤 편인가요?
흔히들 주변에서 원격근무를 한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웃음), 업무의 강도가 약하진 않습니다. 슬프게도 공익활동을 하는 단체나 사회적 협동조합 계열 전반의 급여가 높은 편은 아닌데, 빠띠의 경우 그나마 높은 편이랄까요. 자기의 리듬에 맞춰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워라벨’이 잘 지켜지는 편이에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정의 혹은 소개하나요?
가능성을 믿는 사람, 변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해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누군가는 사회운동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캠페인이나 학술연구를 할 텐데, 저는 기획을 하거나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하는거죠. 사회변화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거든요.

그렇다면 동운님은 기획자인 거네요?
애매한 것 같아요. 일단 빠띠는 직무가 다른 조직에 비해서 명확하진 않긴 해요. 다른 조직 같은 경우는 ‘기획’, ‘경영지원’ 이렇게 나누어져 있잖아요? 굳이 표현하면 ‘커뮤니티 기획자’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그 범주에 명확하게 들어가는가? 라고 질문하면 그런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 걸쳐있는 느낌이 들긴 하죠.

교육 관련 활동을 진행 중인 트리(사진 제공 이야기 빚는 태현)

앞으로의 계획과 조언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제가 하는 활동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해요. 제 선택의 근거 대부분은 ‘이 일을 했을 때 흥미를 느끼고 계속할 수 있는가?’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재미는 이걸 통해 제가 성장할 수 있는지,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 등과 연관이 되어 있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주세요.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사람들에게 좀 더 편하게 와닿도록 하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정치 혹은 나와는 상관이 없거나 너무 어려운 거대한 이야기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일상의 민주주의’가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일상의 영역에서도 동등한 지위에서 대화와 결정을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내년에 팀에서는 시민들이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이슈를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식을 쌓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자 해요. 각자의 관심사를 꺼내놓으면서 그 관심사를 바탕으로 생각을 확장, 발전시키는 거지요.

동운님과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거나 관련 업무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내가 이 활동을 왜 하려고 하는지 명확히 했으면 좋겠어요. 최근 들어서 제 또래 청년들이 이 분야에서 활동하려고 관심을 가지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쉽게 지쳐서 떠나게 되더라고요. 단순히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라는 환상만 가지고 오게 되면 본인 생각과 다르다는 걸 많이 깨닫고 실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영역에서 무슨 변화를 끌어내고 싶은지, 왜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명확히 설정하는 게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 직업을 찾는 일이 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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