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빠띠가 항해를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방향키를 잡았던 2016년의 첫 마음이 떠오릅니다. 다섯해가 지나는 동안 빠띠는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기반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고, 시민이 직접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사회를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거나 암초에 부딪혀 흔들리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라는 나침반을 따라 이내 방향을 찾고 항해를 계속해왔습니다.

5년이라는 활동을 통해 빠띠는 ‘시민이 자신의 공동체나 지역의 공론장에 참여해 협력적으로 소통하고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과정이 일어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공간에 ‘시민협력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실험을 통해 시민협력플랫폼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민협력플랫폼과 관련한 그간의 활동을 모아 ‘민주주의 항해일지 1.0’를 연재합니다. 1.0이라는 버전명을 붙인 것은, 시민협력플랫폼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빠띠가 항해를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더 많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협력플랫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연재물을 읽으시며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화. 우리가 발견한 보물섬 ① 모두를 위한 더 ‘건강’한 공론장

  • 빠띠의 민서(민주주의 서울)와 함께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4화 말미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민주주의의 실현은 역사 이래로 인류가 늘 꿈꿔오던 일'입니다. 빠띠는 민서와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협력과 신뢰로 지속가능한 사회’와 시민협력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현장과 사람, 얻은 경험은 하나 하나 모두 소중했습니다. 보물과도 같은 이 이야기를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공론장’입니다.

이 글은 "4화. 시민협력플랫폼을 향해 한 걸음 더 앞으로"에서 이어집니다.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난다.”
“우리 동네에 바꾸고 싶은 문제가 있다.”
“우리 조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문제가 있다.”

모두에게 한 번쯤 이런 경험 있지 않나요? 이럴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나요? 가장 먼저 이야기할 상대를 찾지 않나요?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한바탕 수다잔치를 벌이거나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지 않나요? 이처럼 일상의 이슈, 사회적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모아 공론을 형성하는 토의의 장을 우리는 ‘공론장’이라고 합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꾸준하고 합리적으로

과거 전문서적 혹은 논문에서나 볼 수 있던 이 말은 이제 우리의 곁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나 길가의 현수막 등에서 ‘공론장 참여자 모집’을 심심찮게 발견하신 적이 있을텐데요. 왜 다들 공론장, 공론장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고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데에 전문가나 대표자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당사자인 시민의 의견을 모으고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론장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대해 공감하고 사람을 모으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제안-숙의(토론)-결정에 이르는 공론장의 전 과정을 세심하게 접근하고 정교하게 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작게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부터 크게는 한 국가까지, 빠띠는 다양한 단위에서 꾸준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일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공론장이 만나면?

현장에 계신 분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활동도 많이 하고 공론장도 열어봤는데, 무엇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고요. 사업 운영자 입장에서도, 참여하는 시민 입장에서도 ‘어떤 제안’이 있었는지, ‘무엇’이 선정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과정을 손쉽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빠띠는 ‘디지털 기술’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앞선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민주주의 서울’(이하 민서) 경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플랫폼을 만들면, 제안-숙의(토론)-결정(더 나아가 실행까지)의 과정을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은 많은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더 많은 연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아 물리적 제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정과 정보가 기록으로 남아 맥락 파악이 용이해 어느 단계에서도 손쉽게 참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대다수 디지털 플랫폼들은 거대 자본이 소유하고 있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론장의 모습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이에 빠띠는 민주주의 서울에서의 실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파트너와의 협업을 통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공론장의 모델을 더 발전시켜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더 많은 연결이 가능할까요?
* 빠띠와 함께한 사례. 민주주의 서울 - 시민토론 : 재개발 길고양이 편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과 의견이 모일 수 있는 사례로 <민주주의 서울 - 시민토론 : 재개발 길고양이 편>이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두고 있었는데요. 이로 인해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제안이 민주주의 서울 디지털공론장 플랫폼에 올라왔습니다. 이 제안에 대해 5000명 이상의 시민이 공감으로 지지를 보냈고, ‘서울 재개발/재건축 전역에서 길고양이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토론이 진행되는 30일 동안 제안은 더 구체화/확장되었고, 민주주의 서울 운영팀은 더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서울 곳곳의 번화가(홍대, 연남동, 양재동 등)로 나섰습니다. 전문가, 정책 담당자들과 함께한 열린토론회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지역(경기도, 충청남도 등)에서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있는 시민분들이 찾아오시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맥락 파악이 용이할까요?
* 빠띠와 함께한 사례. 작은도서관 문제해결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
빠띠가 서울도서관과 함께 진행한 작은도서관 거버넌스 구축 사업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시민의 의견과 정보를 모으고 축적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선, 시민의 관점에서 작은도서관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아보고, 이를 디지털공론장 플랫폼에 기록한 후 토론을 통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선택했습니다. 오프라인이나 화상화의로 진행된 토론 기록을 플랫폼에 기록하여, 어떤 논의과정을 거쳐 다음 단계를 결정했는지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과제를 실행하는 과정 역시 매주 기록으로 남기면서 시민들이 실행 과정에도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만능은 아냐

디지털 기술은 더 나은 공론장,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에 큰 보탬이 됩니다. 하지만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탄탄한 운영이 뒷받침 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고 해도 무용지물이 되기 쉽고 악용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빠띠는 파트너와의 협업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뿐만 아니라 운영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1. ‘디지털 공론장을 왜 만드나요?’ : 목표와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목표와 목적이 정리되지 않으면 제안-숙의(토론)-결정의 명확한 설계가 어렵습니다. 이 경우 공론장에 참여하는 시민뿐만 아니라 운영 입장에서도 혼란스럽습니다. 자연스레 운영의 중심을 잃기 쉽고 성공여부 역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빠띠와 함께한 사례. 민주주의 서울 : 민서 1단계에서는 제안-토론-결정의 프로세스를 시민에게 알리고 더 많은 참여와 논의를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상의 공론장 경험을 쌓은 후, 더 많고 실질적인 결정을 하는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목표를 세웠습니다.

2. ‘공개하면 발전합니다’’ : 공론장의 모든 과정과 정보를 최대한 공개합니다.

생각보다 현장의 많은 이들이 여러 이유로 공론장 진행 과정과 정보 공개를 우려합니다. 무고, 욕설, 비방 등의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기술과 운영으로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개는 단점보다 이점이 훨씬 많습니다.

1) 제안의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의견에 의견이 더해지면서 제안은 조금씩 성장합니다. 마치 작은 돌들을 하나씩 쌓아서 커다랗고 탄탄한 돌탑을 만들어 가듯이 말이지요.

2) 나와 비슷한 생각이 담긴 제안을 보며 공감을 통해 힘을 얻거나, 다른 방향의 제안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자신에 대한 효능감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만듭니다.

3) 참여한 시민들은, 시민의 참여가 실제 문제 해결이나 지역의 변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때문에 과정과 정보의 공개는 공론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빠띠와 함께한 사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WTA : 보통의 공모전과 달리 WTA는 공모에 참여하는 제안을 공개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함께 고민/해결해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 공개 제안하고, 토론으로 더 나은 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제안엔 피드백으로 답하는 게 인지상정” : 적시에 피드백을 합니다.

참여 시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안 수용’ 여부가 아닙니다. 그들은 내 제안이 잘 전달되었는지, 휘발하지 않고 충분히 검토가 되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이에 제안-숙의-결정 각 과정에서 피드백을 적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빠띠와 함께한 사례. 경기도 마을정책플랫폼 ‘도미니’ : 도미니는 주민의 제안에 댓글과 대댓글로 피드백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안이 충분히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제안의 구체화와 발전을 위한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4. “우리 이런 것은 꼭 지켜요” : 공론장의 규칙이나 의제선정 기준 등을 참여자와 함께 만들어봅니다.

운영팀 단독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 경험을 가진 시민과 함께 공론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제선정 기준을 함께 만들어봅니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면서 공론장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당사자의 입장과 필요를 반영한 의제 발굴이 가능합니다. ‘공감(동의) 몇 회 이상의 제안은 토론 단계로 넘어간다’ 등의 운영 세부 과정을 함께 논의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빠띠와 함께한 사례. 서울청년유니온 디지털공론장 플랫폼의 약속문.

5. “아, 너무 어려운데?” : 공론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여 확산합니다.

공론장 주제 관련 정책이나 뉴스, 결과물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홍보합니다. 이런 읽을거리 등은 참여의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때문에 참여를 어려워하거나 의지 혹은 관심이 없는 시민을 끌어들이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공론장 가이드와 예시를 만들어 활용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빠띠와 함께한 사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지역사회 청소년 도박 예방 위원회 공론장 플랫폼 :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도박 문제에 대해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카드뉴스, 기사, 동영상 등)의 관련 콘텐츠를 모아 플랫폼에 업로드 했습니다.

6. “지역과 공동체를 개선할 수 있다면!” : 민원과 제안을 딱 잘라 구분하지 않습니다.

참여자가 민원과 제안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민원이 제안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민원을 포함하여 지역과 공동체를 개선하는 제안이 오가고 함께 토론할 수 있도록 시민의 의견을 성실히 듣습니다.

빠띠와 함께한 사례. 민주주의 서울 : 난임부부 지원, 재건축단지 길고양이 보호, 공공재활병원 설립 문제 등은 행정기관에서 즉각 개선이나 해결 방안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는데요. 이 문제를 플랫폼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리고, 다수의 의견을 모으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확인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한 공론장은 시민협력플랫폼의 밑거름

지금까지 빠띠와 함께한 파트너들은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협업 사례를 보고 빠띠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현장이 늘어나는 일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우리 주위의 문제가 민주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요.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협력의 출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공론장은 ‘건강’한 시민협력플랫폼을 만드는 데에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빠띠의 방법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이 빠띠를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빠띠의 파트너들이 그랬던 것처럼, 빠띠와 머리를 맞대고 모두를 위한 더 ‘건강’한 공론장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빠띠의 밑그림에 알록달록 색을 채워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스케치 자체를 수정해주셔도 좋습니다. 멋진 그림을 위해 빠띠도 더 다양한 현장을 찾겠습니다.

글 : 일상의공론장팀(demos@parti.coop)

  • 이 글에 이어 ‘채정숙 은평대조꿈나무어린이도서관 사서 인터뷰 - 함께 만드는 작은 도서관'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빠띠와 함께했던 경험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해주셨어요. [읽으러가기]

  • 이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은 빠띠의 툴킷과 가이드를 소개합니다.
    1) 공론장 운영가이드 [보기]
    2) 작은도서관 거버넌스 운영가이드 [보기]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2021년은 빠띠가 항해를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방향키를 잡았던 2016년의 첫 마음이 떠오릅니다. 다섯해가 지나는 동안 빠띠는 서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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