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4프로젝트'는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시민들과 함께 '가치소비'를 주제로 만든 이슈 커뮤니티입니다. '944프로젝트'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소비 생활을 지향하는 멤버들이 모여 가치소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교류·수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커뮤니티에 쌓인 데이터를 잘 정리해서 더 많은 사람이 가치소비를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고민 중이라고 하는데요, '944프로젝트'의 멤버 아민님과 봄봄님을 만나 커뮤니티 활동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944프로젝트' 커뮤니티는 https://944.parti.xyz 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비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에요.
소비를 하며 가졌던 서로의 의문들과 불편함을 이야기 나눌 수 있을때 그 자체로 중요한 상호배움이 일어납니다. '당연'하다거나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무력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 우리에게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힘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거든요.
우리는 환경, 동물권, 젠더, 장애, 노동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내가 더이상 소비하지 않는 것들'을 글과 엑셀의 형태로 공유하고 문제의식을 나눕니다. 그리고 서로의 대응방식을 참고하고 더 나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해나갑니다. 이것을 토대로 우리는 앞으로 <가치소비 가이드라인>을 만들거에요.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늘상 일어나는 소비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944프로젝트' 소개 글
Q. 처음에 커뮤니티 이름을 보고 ‘944’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구(9)분하여 사(4)는 사(4)람들’의 줄임말이더군요(웃음). 커뮤니티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아민 : 커뮤니티 이름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많은 멤버의 표를 얻은 게 ‘944프로젝트’였어요. 기억하기도 쉽고, 재미있는 이름이기도 하고요. 무엇을 ‘구분’한다는 건 일정 기준에 따라 선택한다는 의미인데, 소비생활을 할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기준으로 제품이나 기업을 구분해서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서 ‘구분하여 사는 사람들’이란 이름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것 같아요.
봄봄 : 일상에서 가치소비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치 지향적인 소비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별생각 없이 이런저런 물건을 사지만, 우리의 소비 행위는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과 연결돼 있어요. 따라서 우리가 올바른 가치 기준에 따라 소비하면 그 영향력이 쌓여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인 소비생활이 좀 더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내가 선택한 물건의 사회적 영향력,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기업의 문제점 등을 커뮤니티 안에서 공유하며 더 나은 선택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요. 조금씩 노력한다, 실험한다는 의미에서 커뮤니티 이름에 ‘프로젝트’가 붙은 것이고요.
Q. ‘944프로젝트’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아민 : 가치소비를 실천할 때 필요한 데이터와 정보를 모으는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가치소비의 기준들을 환경, 동물권, 젠더, 장애, 노동 등으로 카테고리화하고, 이러한 가치를 실천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어요. 또 주변에서 가치소비를 할 수 있는 가게들도 찾아보고 있고요. 사실 자주 다니는 동네를 벗어나면 어디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덕분에 좋은 공간들, 가보고 싶은 공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봄봄 : 혼자 알고 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생각의 폭이 넓어져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옳은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곱씹어볼 수도 있고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나누려다 보니 여태껏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았던 것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죠.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자주 들르던 상점을 커뮤니티에 소개하려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덕분에 상점을 왜 열게 됐고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는지 등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Q. 커뮤니티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봄봄 : 가장 많은 멤버가 모일 수 있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서 매주 온라인 모임을 열고 있어요. 모임을 열 때마다 진행자, 회의록 작성자, 타임키퍼 등 필요한 역할을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맡고요. 모임에서는 각자 다음 모임까지 실천하고자 하는 일종의 숙제를 정해요. 일주일 동안 실천한 가치소비 활동을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하는 것인데, 소비 이유와 이로 인한 영향력,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개선점 같은 것들도 함께 정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모임에서 이렇게 기록한 것들을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아민 : 이렇게 각자 기록하고 함께 이야기 나눈 것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로 만드는 것 또한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예요. 그래서 모인 기록과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가공할지도 논의하고 있어요.
봄봄 : 블로그 형태로 발행할지 아니면 노션을 활용할지, 영상을 만들지 책자를 만들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죠.
아민 :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은 혼자서도 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정보의 양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정리 체계나 기준을 세울 때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죠. 그래서 가치소비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못지않게 기록과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하고 다듬을지 모임에서 논의하는 게 큰 도움이 돼요.
봄봄 : 좋아하는 글귀 중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어요. 가치소비는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활동이지만 더 많은 사람과 함께했을 때 더 큰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의 작은 노력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파장이 되는 거죠. 팬데믹을 계기로, 사람은 결국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간다는 걸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두가 나서야 한다는 걸 누구나 인지하고 있죠. 혼자 하면 혼자만의 것으로 남고 말 것들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게 되면 그게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시너지로 발전할 수 있어요.
Q.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무엇인가요?
봄봄 : 그동안 실천해온 가치소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커뮤니티에 참여해 가치소비 활동을 기록하며 정리하지 않았다면 놓쳐버렸을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평소 자주 가던 드럭스토어가 있어요. 정기 할인 행사 때는 매장을 거의 쓸어오다시피 했는데(웃음), 커뮤니티에서 그 드럭스토어가 여성 직원들에게 ‘꾸밈 노동’을 강요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척 충격받았죠. 제 소비생활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던 곳인데, 앞으로는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가지 않으려고요.
아민 : 가치소비를 실천할 때 무엇보다 ‘기준’을 세우는 게 어려웠어요. 하나의 제품을 선택할 때도 젠더, 환경, 노동 등 여러가지 가치 기준이 교차해서 적용될 수 있거든요. 944프로젝트에서 저처럼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더 많은 사람과 어떻게 기준을 세울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혼자서는 파편적으로 접하게 되는 제품·기업 관련 정보들을 함께 모아서 정리하는 것도 보람 있고요.
또 나름대로 다양한 사회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젠더나 동물권에 비해 장애, 노동에 관해서는 제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사회 이슈에 관한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Q. ‘944프로젝트’가 앞으로도 꾸준히 원활하게 운영되려면 어떤 요소가 가장 필요할까요?
아민 : 아무래도 커뮤니티 활동은 강제성이 없다 보니 결국 참여하는 멤버 개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목표 의식이나 목적이 명확할 때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멤버들과 함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이슈 커뮤니티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인 것인 만큼 약간의 부담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민 : 본격적인 커뮤니티 활동에 앞서 다른 이슈 커뮤니티 참가자들과 한 자리에 모였던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이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도 다른 커뮤니티 참여자들과 교류하는 자리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종종 다른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무엇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둘러보곤 하는데, 사실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잖아요. 다른 커뮤니티 활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또 빠띠 커뮤니티 전체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우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아민 : 기술적인 지원으로는 - 커뮤니티 플랫폼을 활용하는 데 참고할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고, 앞으로 빠띠 커뮤니티에서 캘린더 기능이나 마일스톤을 점검할 수 있는 기능 같은 것들이 더 추가되면 어떤 이슈에 관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커뮤니티에게는 유용할 것 같아요.
봄봄 : 아민님 말씀대로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커뮤니티 활동은 직장생활이나 개인사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사이드’ 활동이니까요. 그래서 커뮤니티에 참여했을 때 돌아오는 혜택이 있다면 참여 의지가 약해지는 걸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물론 혜택 없이 꾸준히 유지되는 게 가장 좋겠지만요(웃음).
봄봄 : 저는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임하겠다는 마음으로 ‘944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같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생각을 나누자고요. 독재자인 히틀러가 손꼽히는 다독가였다는 것 아세요?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해도,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으면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지고 말죠. 그렇게 고립되고, 오만해지고요. 그래서 저는 생각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모여서 수다 떨듯이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있잖아요. 모임이 재미있어서 꾸준히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된 것 같아요.
Q. 앞으로 ‘944프로젝트’에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봄봄 : 팬데믹 위기만 아니면 오프라인으로 모임도 하고 작은 이벤트도 열 수 있을 텐데, 모든 걸 온라인으로 진행하다 보니 아쉬움이 커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옷깃 스칠 일이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커뮤니티에서 쌓은 관계나 대화가 쉽게 휘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요. 같은 오프라인으로 멤버들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가치소비를 주제로 강연이나 토크 콘서트 같은 것도 열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런 날이 오긴 오겠죠?
아민 : 커뮤니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멤버들 각자 하고 싶은 프로젝트 아이디어들을 적어봤는데, 외부로 뻗어나갈 수 있는 액션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가치소비 가이드라인이나 소비생활을 점검해보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가치소비를 실천하고 싶은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였죠. 그렇게 우선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고요.
아민 : 이렇게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커뮤니티가 좀 더 느슨하게,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되면 좋겠어요. 지금 멤버들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진 않더라도, 궁금할 때 커뮤니티에 들러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는 식으로요. 그렇게 되면 ‘944프로젝트’의 임팩트가 더 멀리 퍼질 수 있을 테니까요.
아민 : 음, 저는 사람들이 조금 더 제대로 알게 되면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어요. 아직은요(웃음). 일부러 지구에 해를 끼치고 싶어서 플라스틱 제품을 사는 건 아닐 거라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지구에 이롭지 않은 선택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치소비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널리 퍼져서 더 많은 사람이 ‘나도 한번 해볼까’ 하게 되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해요.
인터뷰 진행·정리 : 한승희
편집 : 빠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