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맞이 후회 없을만큼 놀았던 2017년 여행기>

 뒤돌아보니 어느새 이 나이가 되어 있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 놀라웠다. 2017년 초반의 나는 김 빠진 풍선 같았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 재미 삼아 시작한 사업에 발목을 잡혀 정신 없이 일만 하다가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신혼여행 때 킬리만자로에 올라서도, 세렝게티 초원에 가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며 일을 했다.그래도 무엇 하나 남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째로 사라진 6년 여의 시간이 야속했다.그래서 떠났다. 정신 없이 일한 대가로 통장만은 여유로웠다. 여행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남는 게 없을 것만 같아서 떠났다.

 

 여행의 시작은 정열의 대륙 남미였다. 페루에서 시작된 여행은 마추픽추와 볼리비아 소금사막을 지나 브라질 쌈바 카니발로 끝났다. 노는 것에 학위가 있다면 음주 박사, 가무 박사, 친화력 박사까지 트리플로 따놓은 게 분명한 남미 사람들은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는 내 몸과 마음을 뻠삥 해주었다. 와, 세상엔 이만큼 노는 사람들도 있구나. 감명을 받았다. 브라질 친구는 카니발에서 맥주를 잔뜩 마시고 춤을 추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길거리에 주차된 차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노상방뇨를 했다. 그러면 나는 오줌 싸는 친구를 가리기 위해 그 앞에서 열심히 춤을 췄다. 친구가 다 싸면 내가 오줌을 싸고 친구가 춤을 춰주었다. 카니발이 열리는 골목은 사람들 오줌으로 노란 시냇물이 흘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마치 무법자가 된 것 같은 마음과 쌈바로 가득 차 빵빵한 풍선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귀국 후 일주일 만에 다시 폭삭 쪼그라들었다. 내가 있는 현실은 정열적인 남미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신년부터 회사 일로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일 뿐이었다. 그 사이 17년 간 기르던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밤에 자다 깨면 강아지 동영상을 보며 울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다른 여행지로 떠났다.

 

 두 번째는 동남아였다. 저렴한 물가와 따뜻한 날씨, 맛있는 음식에 푹 빠져 베트남에서 시작해 캄보디아로, 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북적대는 여행지를 떠나 낯선 곳을 가고 싶어 여행자가 거의 없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가족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침, 저녁으로 내가 묵는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와 낮에는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밤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맥주파티에 초대했다. 어느 날은 작은 배 위에서 랍스터 파티를 벌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을 유일한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읽을 줄도 모르는 베트남 노래를 불렀다. 그 집의 첫째 아들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반가웠던 모양이다. 나는 동남아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까지 따고 나서야 겨우 발걸음을 돌려 한국으로 들어왔다. 쪼그라들었던 풍선은 다시 모험심으로 가득한 빵빵한 풍선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나는 다시 쪼그라들었다. 한국에서의 현실과 부딪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이뤄놓은 것 하나 없는 나부랭이 같았다. 여태껏 하던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취직을 할 수도 없고. 사춘기라도 온 마냥 하루에도 열댓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 했다. 어느덧 2017년의 중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일도 많지 않던 나는 침대에 누워 허송세월을 보냈다. 무기력한 매일이 지속되던 어느 날,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았다. 엄마는 네 달 뒤에 있을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수술 날짜를 멀찌감치 잡았다. 그제서야 나는 엄마가 입버릇처럼 프라하를 자유여행으로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던 걸 기억했다. 암 선고를 받고 이 주 뒤 엄마와 나, 동생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다.

 

 체코와 헝가리,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까지 다녀와서야 나의 2017년 여행 유랑기가 끝났다. 난생 처음 세 모녀가 함께 떠난 해외여행은 의외로 무탈했고, 엄마는 내게 평생 소원을 풀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동생은 지난 주에 무사히 식을 올렸고, 엄마의 암은 다행이 진전이 없다. 나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를 문신으로 남기기 위해 타투샵 예약을 잡아 두었고, 여전히 내 삶의 길은 찾지 못한 상태다.

 

 사실 2017년의 여행은,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행 보다는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었다. 현실의 나에게서 도망치듯 떠나간 여행지에서, 활력 넘치는 나를 발견하였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문제들을 잊고 살던 나를 보았으며 내 무기력의 근원지가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던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찾았다. 조금 더 잘 해줄걸, 울며 후회해도 이미 떠난 강아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조금 더 자주 들여다볼걸, 자책해도 엄마의 암은 낫지 않는다. 돌아간 나의 20대도 마찬가지다.

 

2017년 원 없이 다녀온 여행 끝에서 나는 이런 것들을 배웠다.

길을 찾지 못했다고 길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것, 어디에 있더라도 돌아온 길을 되짚으며 후회할 시간에 한 발 짝이라도 나아가라는 것, 다른 사람이 세워놓은 표지판에 흔들리지 말 것, 길이 반드시 앞으로만 나있진 않으니 돌아가는 것 같아도 걱정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을 것.

 

올해도,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