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아해요>
“혹시 여기 출신이세요?”
스페인 도착 직후 버스 옆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황당했지만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라고 답하니 너무 차분해 보여서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이 분은 내가 속에서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 길이 없었나 보다. 불안감을 들키지 않아 기분은 좋았지만 (괜히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면서 불안해 하면 만만한 관광객으로 타겟이 되기 쉽기에) 비행기에서부터 괜시리 불안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낼 이 도시 말라가에는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기에 그랬던걸까.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불안하고 무서웠다. 오롯이 홀로 서기가 될 한 달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2016년 말, 정말 스페인에 오게 될지 모를 시기에 작성했던 2017년 Wish List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한 달 생활하기.’ 그리고 옆에 후보로 제주도, 태국, 스페인이 적혀있었다. 갈수록 스케일이 커졌지만 나는 결국 가장 먼 곳 그리고 가장 큰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소원이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또한 이룰 수 있었다. 이 곳은 나에게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려주었다.
도착한 첫 날, 근처 바에서 열쇠를 받아 한 달 간 머물 쉐어하우스에 들어갔는데 집안이 너무 휑했다. 방마다 짐 하나 없었고 냉장고도 텅텅 비어있었다. 외로웠고 무서웠다. 하우스 메이트 자체가 있긴 한 건지 온수는 어떻게 트는지 궁금한게 너무 많았지만 물어볼 사람 한 명 없었다. 관계자와 연락수단은 이메일 뿐이었고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기에 답장을 줄리 만무했다. 그냥 어찌 됐든 월요일까지 버텨내야 했었다. 그렇게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너무 외로웠다. 이 도시에 아는 사람, 말 붙일 사람 한 명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그렇게 어찌하나… 나는 왜 구지 이 도시로 왔는가… 고민하던 찰나에 문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함께 살 하우스메이트가 등장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너무 반가워서 강아지처럼 달려가 인사했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줄 알았다며, 네가 와서 너무 좋다고 필터도 안된 이야기들을 뱉어냈다. 몇 초 벙쪄 있던 친구는 금새 인사하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서로 가볍게 이야기한 후 각자의 방으로 갔다. 갑자기 힘이 나고 뭔가 할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2층에 있는 새로 온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그렇게 마트로 향했다. 그게 스페인에 와서 처음 만난 친구와의 처음 같이한 활동이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긴 했다. 애초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새로운 도시에서 살고자 했던 이유가 홀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니 동네 마트 마저 처음 보는 친구와 같이 가고 싶어하는게 참 웃길 노릇이었다.
그 다음날 내가 향한 곳은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집이었다. 스페인짱이라는 네이버 카페에서 연락이 되어 만나게 된 한 살 동생 친구의 집이었다. 밥을 먹고 싶다는 내 이야기에 흔쾌히 자기 집으로 오라고 이야기하는 동생을 보면서 사실 고마움보다 의심이 먼저 들었다. 아니 여기 이 먼 곳에서도 설마 인신매매나 사이비 종교가 있을까? 바로 간다고는 말했지만 많이 불안했다. 하지만 한국 친구인데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할까 싶어 생각을 정리해버렸다. 한국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 구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동력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 친구는 멀쩡하게 교환 와서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는 친구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는 미쳤냐며 모르는 사람 집에 가는게 말이 되냐며 엄청나게 욕을 먹었지만 거기서 동생이 해준 한국식 집 밥은 할머니 집 밥처럼 따뜻하고 맛있었다. 가끔씩 사람들이 ‘이 음식은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네요’ 할 때면 저게 뭔 말인가 싶었는데 그 친구 밥이 정말 그랬다. 혼자 있던 서러움을 다 녹여주고 마음을 포근하게 해줬다.
그렇게 나는 나머지 여행도 사람으로 채워나갔다. 신기하게도 여행 중에는 친구 사귀기가 너무 쉬웠다. 언젠간 이 도시를 떠나고 이 사람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알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도시가 기억되는데 있어서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기억을 얼마나 좌지우지 하는지 알게 되었기에, 나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떤 사람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것 또한 알아내는 것이 큰 재미 중 하나이기에.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스친 그들이 고마울 뿐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제림의 짧은 글, 끝!
https://parti.xyz/p/welovetraveling (이 곳에 오셔서 못 다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기를 바라용..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