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마음으로 살았던 2017>

통째로 배낭여행에 갖다바쳤던 2015년이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디서 잘지, 뭘 먹을지, 어떻게 이동할지만 해결하면 그럭저럭 잘 보낸 하루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느슨하게 보내도 '나는 여행자다!'라는 핑계 아래 별다른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게 정말 좋았다.

올해도 그때를 떠올리며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1년을 최대한 느슨하고 방탕하게 보내보자!' 고 마음 먹었는데(게으름중독자).. 학교수업과 아르바이트 2개를 병행했어서 딱히 엄청 여유롭진 않았던 것 같다. 방탕하게 지내지도 못했다.. (;ㅁ;) 그래도 '뭔가 해야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내려놓고 살기로 했던 다짐은 지켰던 한 해라, 그 마음의 느슨함을 기반으로 했던 것들을 돌아보려 한다.

1. 집밥을 꾸준히 만들어먹었다.

올해는 밥을 집에서 많이 해먹었다.
동생과 함께 부모님 집에서 드디어 독립하게 됐는데, 덕분에 주거공간에 더 주인의식을 갖게되면서 '집에서 건강하게 잘 해먹기'를 과제로 삼았다.
나는 원래 돈을 먹는 것보다는 경험재에 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밖에 있을때의 끼니는 대부분 편의점 라면or삼각김밥으로 때우곤 했었다(누군가 함께 먹을때 빼곤).

그런데 해먹는 습관을 들이면서, 음식이 경험재의 영역에 들어오게 됐다.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재밌어졌고, 맛있게 먹는 얼굴을 보면 뿌듯하고, 사람들과 요리를 해서 옹기종기 나누어먹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그래서 요즘엔 사람들을 자주 초대해서 밥을 해먹이고 있다.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모르겠는 상태에서(곧 종강=공식적 백수) 가장 잘해먹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셈인데, 잘 해먹는 습관 덕분에 '앞으로도 뭐, 먹고는 살겠지!' 라는 요상한 자신감(?)도 생겼다.

2. 드림캐쳐와 팔찌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재작년에 인도에서 매듭공예를 배웠는데, 올해도 뭔가 꼼지락 거려보고 싶어서 드림캐쳐와 팔찌를 꽤 만들었다. 재료가 다 떨어져서 숲에서 주워온 재료로도 만들곤 했는데 그걸 사람들이 꽤 좋아하길래 덕분에 자주 산에 가게됐다(헥헥).
가끔 만드는 법을 지인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누군가와 같이 손을 움직여서!무언가 만드는 일이 되게 좋구나!'라고 느꼈다. 그런 만남을 자주자주 가지고 싶어졌다. 

3. 우쿨렐레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훅 늘었다.

우쿨렐레를 사고 5년동안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 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좀 늘었다. 정말 허접하지만 여름에 다녀온 몽골 여행중에 곡도 하나 썼고, 다음주엔 처음으로 돈을 받고(!) 연주와 노래를 하게되는 행운도 생겼다.

사실 아주아주 옛날 나의 꿈은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크게 꾸지람을 들은 후 '노래는 취미로만 해야하는 거구나'하고 마음을 접었었다(선생님 아직도 미워요 흑흑). 그런데 올해 여기에 할애하는 시간을 조금 늘리면서, '곧 취미가 아닌 특기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 언젠가는 이걸 일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꿈이 얕게나마 생겼다.


4. 책 50권에 대한 독서노트를 썼다.

내 머리는 책을 읽고 나서 정보를 빠르게 휘발시키는 능력이 있다. 최근에 읽은 책도 안 읽은 책으로 보이게 하는.. 그래서 늘 '독서노트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새 책에 대한 욕심으로 그 다짐을 외면해왔는데, 올해는 시간도 많았고 에버노트 앱을 쓰기시작하면서 꽤 열심히 독서노트를 썼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노트가 꽤 쌓이니까 과제할 때나 누군가에게 정보를 알려줄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17년은.. 음. 이렇게 쓰고보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잘 좋아할 수 있게 된 한해였던 것 같다. 취미, 습관으로 만들고 싶던 것들을 '정말' 취미와 습관으로 만들 수 있어 좋았다.

내년엔 좀 더 먹고사니즘과 관련된 활동들을 해야할텐데, 올해 보낸 시간들이 앞으로 보낼 시간들에 대한 체력이 되어 줄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빠띠 눈팅만 하다가 연말에 글을 올리게 되었읍니다..! 오늘 서울에서 경주오는 무궁화호에서 깨작깨작 적었어요. 한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어 좋네요. 2018년에는 빠띠 눈팅족에서 벗어나보고 싶어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