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씽의 Best 3 & Worst 3
 
대림절 달력 이벤트 <뭐했어요?>에서 저는 올해 저의 갖가지 소비 경험을 돌아보며 베스트 3와 워스트 3를 꼽아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저의 취향에 기반한 것이므로 너무 맹신하진 말아주세요. 누군가에겐 제 워스트 경험이 베스트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리며... 그럼 시작해보죠.
 
워스트가 더 궁금하시지 않나요? 그래 워스트부터!
 
 
Worst 1. 책편: <채소의 온기> 
 
솔직히 망설였습니다. 나쁜 책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그 책 제목을 굳이 말해야 하는가. 고민이 들었죠. 하지만 이 책만은! 이 책만은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채소의 온기>라는 책입니다. 집에서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채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데요. <채소의 온기>라니 제목도 넘 예쁘고, 살짝 펼쳐보니 채소와 요리 이야기, 일러스트가 결합된, 가볍지만 따뜻한 책 같아서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브런치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출판했다는 이 책은... 에세이와 레시피와 '네이버 지식인'을 버무린 듯한 독특한 구조를 통해... 책을 읽다가 네이버 레시피/지식인을 검색해서 읽고 있는 듯한 독서경험을 안겨주었습니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구멍은 빈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근> 편을 보면, 6문단은 "무엇이든 진짜 자신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라고 하며 조바심 내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는데 다음 문단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연잎은 해독작용이 있고 지혈 효과와 어혈에 효과가 있다. 연잎밥은 커다란 연잎에 찹쌀로 지은 밥을 넣고 대추, 은행, 밤 등을 함께 넣어 찐 것이다." 응?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나한테 왜 이러세요? 브런치였다면 외부링크로 연결해서 볼 내용을, 인쇄된 책에는 다 담으신 건가요? (그렇다면 너무 신박한 편집이다!!!) 그래요. 제가 잘못 구입한 것이지 이 책이 잘못된 건 아니겠죠. 저에게 따뜻한 온기보단, 큰 웃음을 안겨준 이 책. 어쨋든 저에겐 올해의 워스트 책입니다.
 
  • 한 줄 요약: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가의 상상력에 흠뻑 빠져보시길! 

 

Worst 2. 음식편: <강레오의 쉐푸드 스파게티 볼로네이즈> 
 
지금 당장 스파게티가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어요. 소스로 범벅이 된 풍부한 맛의 스파게티가 먹고 싶지만 시간이 늦어서 식당은 닫았고, 집에서 만들어먹을 체력은 남지 않은 거죠. 그래서 할 수 없이 편의점에서 스파게티를 샀습니다. <강레오의 쉐푸드 스파게티 볼로네이즈>. 음. 면을 삶지 않아도 되고, 소스도 느끼해 보여서 골랐어요.
 
그런데 이것은 흡사 20년 전 태어나서 처음 먹었던 스파게티. 학교 급식으로 나왔던 그 스파게티 맛이었습니다. 네, 그럴 수 있죠. 복고의 맛, 추억의 맛도 좋죠. 하지만 '강레오'는 무슨 죄입니까. 잘 모르지만 해외에서 온 사람 아니에요? (강'레오'니까...) 양은 어찌나 적은지. 세수하려고 두손을 모았을 때 담기는 물의 양. 딱 그 정도였어요. 그림과 달리 건더기는 라면 건더기 스프 정도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쉐프의 000' 이라고 적힌 제품은 다신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한 줄 요약: 강레오가 복원한 급식의 맛! 두 젓가락이면 끝.
 
 
Worst 3. 여행편: <주말의 교토 '아라시야마'>
 
이번엔 여행입니다. 저는 올해, 예전부터 가고 싶어했던 교토에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두 번 다녀왔어요. 늦여름과 가을을 맛보았죠. 조용하고 깨끗하고, 오래된 것들이 많고, 좋은 카페와 가게가 많은 도시였어요. 앞으로도 교토는 계속 여행을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러나, 교토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라시야마’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간 때는 11월의 주말이었는데요. 하필이면 그 때가 단풍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성수기'였던 겁니다. 관광버스 수십대가 길에 줄서있고, 미리 알아보고 찾아간 ‘오반자이 부페’(채소 반찬 중심의 반찬부페)는 1시간 30분 동안 기다렸습니다. 30분 기다려서 마신 커피도 기대에 못 미쳤어요. 저는 깨달았어요. ‘안 가보면 후회할 것 같은 유명한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 한 줄 요약: 사람이 많은 곳은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알고 싶지 않다)

 

 
음, 여기까지 썼는데 체력의 한계가… 베스트는 간략하게 쓸게요. (주의! 저한테만 좋은 것들일 수 있습니다!!!)
 
베스트 3
 
Best 1. 사물편: <이케아 LED 촛불> (제품명은 ‘스퇴펜’이네요)
 
첫 번째 베스트는 이케아에서 나온 LED 촛불입니다. 일종의 ‘인공 촛불’인데요. 제품을 들어서 뒤집으면 켜지고, 다시 뒤집으면 꺼집니다. 간단하죠? 저는 이걸 침대 머리맡에 둡니다. 잠들기 전, 스탠드는 너무 밝고, 완전한 어둠으로 들어가긴 뭔가 아쉬울 때 사용합니다.(책 읽기엔 어두워요) 졸음이 쏟아질 때 스탠드 스위치 찾는 것도 귀찮은데, 이 제품은 머리 뒤로 손 뻗어서 ‘딸각’ 한번에 꺼지니까 그렇게 편할 수 없어요. 또 한 가지 특징은 진짜 촛불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처럼 불이 흔들~ 흔들~ 한다는 겁니다. 나름 그럴싸한 ‘무드’를 연출해줍니다. 검색하다보니 ‘수유등추천 이케아 스퇴펜’이라고 나오네요! (https://goo.gl/9KpDTf)
 
  •  한 줄 요약: 제 맘대로 말해봅니다. "결국 언젠가 집은 이케아가 될 것이다.” (나는 무인양품이면 좋겠는데…)

 

 
Best 2. 음식편: <봄동 된장국> 
 
봄동을 아시나요? 저는 올해 처음으로 봄동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올해 봄동된장국만 15번은 끓여 먹은 것 같아요. 한번 끓는 물에 데쳐야 하는 얼갈이배추보다 간단하고, 식감도 부드럽습니다. 그나저나 봄동은 겨울에 먹는데 왜 ‘봄’동인지 모르겠네요. 멸치+다시마 육수 끓이고 된장풀고, 마늘/파 약간 넣고, 봄동 넣고 끓이면 끝입니다. (물의 양을 맞춰야 하고, 끓이는 시간도 조절해야 하는 ‘라면보다 간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겨울엔 봄동입니다. 봄동 된장국을 드세요!
 
  • 한 줄 요약: 봄동은 '봄'동이지만 겨울에 나온다는 걸 잊지 마세요!
 
 
Best 3. 여행편: <통영 봉수골>
 
통영 봉수골을 아시나요? 저는 올해 처음으로 통영에 다녀왔습니다. (위의 봄동된장국 편과 똑같이 시작함. 지친 것 같습니다. 씽 힘내!!!!) 
 
저는 여름에 다녀왔는데요. 사실 통영의 성수기는 봄이에요. 벚꽃이 아름답게 핀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비성수기 전문 여행자'이므로, 여름이 좋았습니다.(솔직히 날씨는 좀 별로입니다만) 특히 봉수골은 "여행자가 별로 없으면서 로컬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그러나 안전한 여행지”를 찾는 분들께 추천해요. 3-40년 정도 된 개성있는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산에서 졸졸졸 흘러내려오는 하천이 중간중간 보입니다. 주택가 골목골목을 산책하는 재미가 커서 하루에 2번씩 동네를 돌았어요. 무엇보다도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운영하는 책방 ‘봄날의 책’과 그 옆에 있는 ‘전혁림 미술관’이 있어서 좋았어요. 자연, 로컬공간, 문화공간이 적절히 모여 있어서, 어디 다른 관광지를 가지 않아도 조용히 머물다 오기 좋은 곳입니다. (제주도로 치면 소심한 책방, 카페와 갤러리, 밥집,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종달리 같은 곳. 서울로 치면 성북동 같은 곳입니다.) 아- 겨울의 남해는 어떨까 궁금하군요. 지금 가고 싶네요. 참, 통영은 ‘관광할 곳’이 아주 많아요. 하지만 저는 별로였어요. 지방 관광지의 쇠락한 풍경들. 그 겉모습을 넘어서 아름다움을 발견할만한 여유는 없었나 봐요. 
 
  • 한 줄 요약: 책방, 로컬, 자연 3박자를 고루 갖춘 2017 씽의 베스트 여행지 

 

가장 좋았던 것, 안 좋았던 것을 이야기하니 뭔가 편협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얼마 전에 짝궁이랑 올해를 돌아보며 수다 떨면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여러분의 올해 베스트, 워스트는 어떤 것이었나요? 내년엔 베스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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