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달력 이벤트 <뭐했어요?>에서 저는 잠깐의 유럽여행 경험을 적어보려고 해요. 시간이 없으신 분을 위해 시를 먼저 준비했답니다.


다른 눈 / 조이성화

마주쳤을 때 아래 위로 훑고 지나간다
서로를 응시하고 얕은 미소를 짓는다

아이를 험하게 나무라고 눈치를 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하철에 마주 앉아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앞 사람과 마주치면 가볍게 수다를 떤다

왜 늦는지 이해하지 않고 급하게 묻는다
기다린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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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으로 갑작스럽게 떠나고자 마음먹은 것은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는 일이 점점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평가하려는 눈들. 자신의
삶에 지쳐 다른 이를 혐오하는 눈들. 다른 이의 ‘눈치’를 보는 눈들. 그 눈을 마주치는 순간 우리 모두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그리고 나는 그 생각들을 느낄 때 마다 고통스러워서 유럽에서는 덜 고통스러울 거야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인천공항을 나섰다.

그리고 그 바램은 정말이었다.

나는 남성으로 태어났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 까지 내가 가진 성별 권력을 인정하지 못했다. 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유를 알 수 없게도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즐겼고 남성에게 다양한 색깔의 옷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투덜거리기 바빴다. 페미니즘과 성별권력의 정치성을 인지한 순간 자연스럽게 내가 항상 새로운 옷, 새로운 머리색에 도전할 때 조롱과 걱정을 듣는 이우를 깨달았다. 페미니즘은 내가 겪는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내 마음의 자세다. 그래서인지 나는 전보다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며 일상복으로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내가 전부터 치마를 입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부끄러움 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어디서 오는 지는 명백했다. 그것은 뿌리깊은 여성혐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게 만드는 타인의 시선에서 온다.

한국 사회의 전형적 남성성에 저항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남자인 친구들은 물론 여성인 혹은 다른 친구, 동생, 선배 너나 할것없이 내 머리카락과 수염을 계속 자르고 싶어했다. 이래서 탈출하고 싶었나봐.

파리에 도착해서 단지 지하철을 탔을 뿐인데 머리카락 길이, 색, 인종, 문신, 화장, etc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면 이렇게 다양할 수 있을까? 거꾸로, 이렇게 다양한데 어떻게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속의 나는 그저 머리가 조금 긴 피부가 좀 노란 사람1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뭐 뚫어져라 쳐다 볼 이유도 없다. 우연히 눈을 마주치면 정말로 웃어주거나 그저 삐죽 미소짓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이 사람들의 관념 속에는 ‘나의 영역’이 어디까지이고 ‘타인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우리보다 더욱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말에 있는 존댓말과 우리나라 특유의 나이제는 내 몸에 습관으로 배여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통계가 아닌 나의 관찰에 따르면 유럽의 사람들은 보통 기분이 좋다. 내 기분이 좋은데 상대를 쉽게 혐오할 수 있을까? 그럴 시간 없지. 물론 한계도 느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에서도 화장한 남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여성보다 외모에 신경을 훨씬 덜 쓴다. 세계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유럽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다. 리옹에 있는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프랑스 남자애들은 머리를 길러도 탈색을 하지 않는다. 네 스타일은 좋아. “ 라고 말이다. 또 한 번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인트호벤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친구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설명은 간단했다. 런던이나 파리 베를린 같이 큰 도시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이 모이니까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주의자는 설 곳이 없는 거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맨체스터의 게이바에서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게이 빌리지의 환한 빛, 그 안의 사람들의 눈에 담긴 사랑을 정말 잊지 못할 거야.

원래 지금 쯤 한국의 이불 속에 누워서 귤을 까먹으면서 글을 써야 했지만 비행기를 놓치고 맨체스터의 친구 집에서 똑같이 귤을 먹으면서 글을 쓴다. 신년엔 표가 비싸서 여행이 2주나 늘어났다. 다른 눈을 더 마주칠 수 있어서 축복이라 느끼며 메리 크리스마스 이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