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크리스마스인 어제 짜잔, 하고 LGBT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까칠남녀의 LGBT 특집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뻥 ~)

아무튼.. 올해를 회고하며 커밍아웃 이후의 삶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네, 그리고 언제나처럼 또 커밍아웃 하자면 — 저는 여성이고, 현재 여성을 사귀고 있는, 바이섹슈얼입니다.

 

#왜 굳이 오픈했어야만 했어?

평생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믿으시겠어요? 사실 고등학생 때 사귀던 여자친구의 어머니에게 교제 사실을 들키고 심하게 폭행을 당했었답니다. 그 후로는 성지향에 대해 외부에 이야기한 적이 없었고, 어쩌면 동성애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지레 겁먹고 호모포빅한 발언을 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20대 전반을 그렇게 보냈고, 남들처럼 남자친구도 사귀었고요. 
그러면서도 늘 퀴어로 보이는 사람에게 나도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외국에 오래 산 사람이 정말 오랜만에 한국 사람 만난 것처럼요 ; 하지만 특별히 그럴 계기가 없었죠.

그러다 올해 초쯤 점점 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고, 결국 십년만에 제 스스로에게도 닫혔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아요. 내가 퀴어여도 괜찮고, 이제는 나에 대해 이야기해도 적어도 폭행을 당하진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동성애자를 입에 오르내리며 우리를 혐오의 수단으로 쓰는 대통령 후보를 보면서 이제는 정말 못참겠다고 생각하게 된거죠. 지긋지긋하다고. 저 대통령 후보들도 그렇지만, 지지하는 후보자가 표를 잃을 수도 있으니 대의를 위해 우선 기독교의 표를 구하고 봐야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혹여나 내 친구일 수도 부모일 수도 이웃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해서요.

 

#신분세탁

근데 .. 어쩌면 생각을 잘못했는지도 몰라요. 저는 오랜시간 직장도, 주변인도, 가족도 제가 혹시 커밍아웃이나 아웃팅(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이 드러나는 경우)을 당했을 때 당장에 어려움이 없도록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왔는데도 곧 두려워졌어요.

앞으로 이 동료가 아니라면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바이라고 오픈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나 때문에 아웃팅을 당하지는 않을까? 새로 태어나는 조카를 내가 퀴어이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이 사실 지금도 쏟아지고 있어요.

커밍아웃을 하고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페이스북에서 600명 친구 끊기를 하고, 주로 쓰는 계정의 이름과 아이디를 신분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바꿨어요. 그리고 이사를 했고, 어디에 사는지 사실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뭐.. 슬프지만 어쩌면 클로짓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갇혀 살게 된 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뭐 대충의 신분세탁을 좀 하고 나니.. 매일 매일이 다르네요.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나에 대해서 이제 알아가고 있어요. 퀴어란 어떤 것이고, 바이섹슈얼이란,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역사, 그 사람들이 지금 처한 이야기들. 혐오나 터부시되는 것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들을 이제 하나씩 찾아서 듣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아직은 오픈리로 산다는 것에 대해 무얼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제일 놀라운 건.. 사실 전 커밍아웃하기 전엔 게이나 퀴어 운동가로만 제가 읽힐까봐 두려웠는데.. 웬걸a 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제가 퀴어인게 자랑스러워졌고… 그러나 퀴어 운동을 하기엔 제가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싶은 겁 많은 보통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아 버린 것 있죠. 
모르겠어요. 아직은 겁이 많아서, 앞으로는 지금 빠띠에서 하는 일 외의 그림이나 디자인 작업은 이름을 바꾸고 다시 시작해야하나, 같은 생각도 하고 있고.


#엑스맨은 못 되도 뮤턴트는 찾을 겁니다

그래도 한가지 목표는 생겼어요. 엑스맨에서 뮤턴트들이 서로를 찾듯 
나와 비슷한 사람들 발견하기. 그리고,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문득 느껴지는 차별에도 크게 슬퍼하지 말기를.

언젠가 나에게 닥칠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될까요?
퀴어라서 놀림, 학대, 폭력, 차별, 죽임을 당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대단한 꿈처럼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낼 만한 것은, 며칠 전에 저를 만난 후 친구에게 커밍아웃했다는 분을 빠띠로 만났어요. 여기부터 시작이겠죠?

곧 퀴어 전용 빠띠가 될 수도 있지만. 퀴어 소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혹시 주변의 퀴어 친구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 
허니클로버레인보우 클럽 — https://parti.xyz/p/honeyclorainbow



** 사진은 베를린 여행에서 찾아간 세계 최대의 레즈비언 아카이브 Spinnboden Lesbenarchiv und Bibliothek e.V. 에 붙어있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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