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사먹기'를 안할래요.

시작은 단순했다. 내가 먹을 밥을 내가 만들어 먹는 일에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고 잘만 계획하면 사 먹는 것보다 비용도 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밥을 해 먹는 일이 단순히 비용의 문제보다는 요리노동을 '내 손으로 직접' 다 해내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자세는 달랐다. 먹는 일을 철저히 외주화했다. 겨울 들어 부쩍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는 나와 전 룸메이트들을 보게 되는데, 주문은 정말 간편하다. 우리는 터치 3~4번 정도만에 갓 튀긴 치킨, 맛있게 조리 된 짬뽕을 먹을 수 있다. 물론 넘치는 일회용기들은 덤이다. 나는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고 작년 언젠가부터 1일 최소 1끼 해먹기 셀프 운동을 시작했다.

1. 계획하는 비용이 가장 비싸다.
제 때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하고 싶으면 재료가 어느 정도는 항상 유지되어야 하는데, 특히 야채는 유통기한이 일주일을 채 넘기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 뜻은 일주일에 한 번은 장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 구석에 던져 놓으면 오래 가는 양파, 미리 썰어놓은 파와 같은 야채들과 점점 친해졌다. 그 주에 다른 일을 하느라 피곤해 야채를 보충하지 못하면 냉동된 고기 혹은 계란, 기본 재료밖에 없어서 대충 볶아 먹거나 삶아 먹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가 냉장고를 보고 매번 계획해야 하니까 정말 어렵다. 사이즈를 키우면 주방에서 재고 담당이 하는 일인 셈!

2. 냉동 재료들이 꽤 쓸만하다.
냉동 돼지고기, 냉동 닭고기들은 생각보다 쓸만했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맛도 날것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이것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듬). 그리고 레토르트 식품들과 친해졌다. 오뚜기, 햇반 생각보다 종류가 엄청 많았다.

3. 혼밥에 익숙해진다.
같이 사는 사람들의 습관을 바꿀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매일 내가 요리를 해서 나눠 먹을 수도 없으니 혼밥이 늘었다. 혹은 룸메들의 배달음식과 내가 만든 밥을 같이 먹는 일도 있었다.ㅋㅋㅋ

4. 부모님께 감사하다.
잘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 엄마가 아침은 물론 저녁까지 챙겨줬던 기억이 있다. 입이 한두 개도 아닌데, 어마어마한 노동인 것이다. 새해를 맞아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ㅠㅠㅠㅠ

그래서... 밥을 완전히 사먹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끼를 모두 계획하고 요리하는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에도 여전히 나는 '밥 사먹기 안할래요' 도전! 작년의 시도를 통해서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어떤 재료가 어떤 시기에 얼마나 필요한 지 대강이나마 그림이 그려졌고 올해는 그것을 더 효율적으로 개선해 보려고 한다. 재료를 미리 손질해 놓거나 손질된 재료를 사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두근두근, 새로 이사한 집에는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룸메와 살아서 좀 더 나아질 지도 모르겠다. 내년 이맘 때 실험의 결과를 업데이트 할게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