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걷다 보면 골목골목,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들을 만날 수 있죠. 그동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이 리어카들은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흔히 ‘폐지 수집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들의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이웃일까요?
<일상관찰가 : 우리동네 리어카>는 춘천사회혁신센터와 빠띠가 협력해 진행한 도시 데이터 수집 프로젝트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관찰가가 되어 도시의 사각지대인 폐지 수집 활동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도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원재생', ‘안전', ‘노동과 가난' 등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폐지 수집 활동은 도시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43.2%(2019년 기준)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재활용품 수거 노인’은 노인 빈곤의 익숙한 모습 중 하나입니다. 2019년 ‘폐지수집 노인실태에 관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성인 중 100명당 1명꼴(2017년 기준 약 6만 6000명)로 폐지를 줍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0월 일상관찰가 오프닝 강연 현장
그러나 폐지 수집의 계기와 과정은 매우 다층적입니다. 2021년 국립생태원은 공모를 통해 ‘폐지 줍는 어르신’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도 했는데요. 생계를 위한 수거의 의미를 넘어, 폐지 수집 활동이 갖는 자원재생적 가치,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환경적﹒사회적 관점에서 이들의 활동을 연구하거나 지원 하는 사례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일상관찰가 프로젝트 또한 폐지 수집 활동을 조금 더 넓은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리어카를 끄는 어르신들을 보며 막연하게 느꼈던 ‘힘들겠다’, ‘불쌍하다’는 마음보다는 수집 활동의 구체적인 과정과 의미를 수집하고,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수집하며 발생하는 문제와 어려움조차도 시혜적 관점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리어카와 폐지 수집 활동 데이터를 담은 보고서
보고서 원문 👉 일상관찰가 활동보고서 : 춘천의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일상관찰가 : 우리동네 리어카>에서 시민들은 춘천 효자동 일대의 자원재생활동가 7명과 직접 동행하며 관찰 & 수집한 데이터를 정제하고 분석하여, 유의미한 데이터 보고서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일상관찰가 보고서에는 어떤 데이터들이 담겨있는지, 간단히 살펴볼까요?🙂
✏️ 리어카 동행 관찰을 통한 데이터 수집
리어카와 자원재생활동가 동행 관찰을 위한 조사항목을 구성하고, 관찰 계획을 세웠습니다. 경제적 상황, ‘수집-판매-보관’ 과정에서의 이슈들, 안전과 위험요소, 사회적관계망의 4가지 분야별로 필수조사 항목을 설정하고, 그외 관찰가의 관심사에 따라 추가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관찰기록지 양식과 조사항목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수집과 보관, 판매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리어카의 속도에 맞춰 골목길, 쓰레기 집하장, 공공기관이나 복지관, 마트, 시장, 아파트 단지, 고물상 등 다양한 장소를 함께 걸었습니다. 수집 이동경로 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들을 직접 기록하고, 자원재생활동가들과 잠시 티타임을 가지고 궁금한 내용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리어카 이동 동선과 거리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러닝 어플을 활용했습니다.
✏️ 지도로 시각화해본 리어카의 이동동선
리어카 이동동선 정보 지도 시각화(mapping)
*일상관찰가 데이터 매핑 링크로 접속하면, 활동가별 경로와 수집처를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이동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도로 시각화해 표현해보았는데요. 지도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담았습니다.
동행 관찰한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이동경로를 표시해보고, 동선 안에서 발견한 주요 거점들을 지도에 표시해보았습니다.
고물상, 세탁소, 슈퍼마켓, 정육점, 공원, 복지관, 아파트단지 등 동네 골목이나 도로변에서 늘 지나치는 요소들을 기록해 표시했습니다.
매일 정확히 같은 동선으로만 이동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활동 반경과 주로 들르는 거점들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자원재생활동가별 관찰 데이터와 스토리텔링
활동가별 데이터 비교_평균수립량 및 고정수집처 항목
지도에 표기한 데이터 외에도 일상관찰가들은 자원재생활동가 개인의 생생한 데이터들을 조사했습니다. 일주일 평균 수집 활동일 수, 하루평균 수집활동 시간, 수집활동을 해온 기간, 고정적인 수집처, 주요 수집 품목, 평균 수집량, 이동상의 위험요소, 건강상태, 활동을 시작한 동기, 사회적 관계 등을 말이지요.
활동가별 스토리로 정리해본 관찰 데이터
이렇게 조사한 데이터는 단순히 수치를 정량화하기 위한 용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들이 가진 일과 삶의 경험에 각각 주목해보고, 서로 어떻게 비슷하고도 다른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수치나 횟수로 표현된 데이터뿐 아니라 관찰 기록을 텍스트로 풀어내고, 인터뷰를 통해 발굴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 개개인의 맥락과 스토리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관찰을 통해 도출한 이슈, 공론장으로 풀어내기
데이터를 정제와 이슈 도출 작업 중인 일상관찰가들
일상관찰가들은 공통의 조사항목을 바탕으로 데이터 수집 활동을 진행하면서도, 틈틈이 개인적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활동 속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누군가는 좀 더 효율적인 수집 프로세스에 대해, 누군가는 안전하고 편리한 리어카 커스터마이징에 대해, 또 누군가는 자원재생활동가들의 생계와 안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시민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누기 위해 공론장을 열었습니다.
공론장에서 나눈 발제와 토론자료 (출처 : 빠띠 캠페인즈)
공론장 결과물을 바탕으로 4가지 이슈를 도출하고, 이슈별 근거자료와 대안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실제로 관찰 활동을 거치며 숙성된 고민도 있었고, 폐지 수집 활동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이 이전과 달라진 부분들도 있었죠.
1️⃣ 수집 - 보관 - 판매’ 과정에서 일어나는 위험들
쉴 틈 없는 수집 활동에 비해 터무니 없는 수입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한 건강 적신호
경쟁, 그리고 관리되지 않는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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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환경
2️⃣ 재활용품 수집과 고령 노동의 상관관계
고령화와 노인빈곤율 심화에 따른 생계 유지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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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폐지 수집으로는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3️⃣ 위험을 줄이려는 시도와 사례들
지방자치단체의 재활용품 수집 관리 지원 조례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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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구조 개선과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 활동사례
4️⃣ 재활용 수집 노동의 가치와 우리의 인식변화
온정적 시선을 넘어, 사회적 기여의 의미와 그에 걸맞은 지원체계 수립으로
시민들의 공익데이터 활동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데이터 활동의 한 축에 빅데이터나 AI 머신러닝을 활용한 기술적 접근이 있다면, 다른 한 축은 일상에서 개개인에게 발생하는 데이터를 살펴보는 인간중심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사회 현상들에 대한 기록이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익데이터이기도 합니다.
"활동이 끝난 뒤엔 길가에서 리어카들이 더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당연하고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분들의 안전과, 노동의 가치도 너무나 당연해지면 좋겠어요."일상관찰가 프로젝트 참여자 소감 中
이처럼 수집되기 힘든 사각지대 데이터를 시민들이 직접 수집하고, 이렇게 모인 데이터 속에는 참여한 시민의 다양한 시각과 역동성이 담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민참여 기반 데이터 수집이 도시 문제 해결에 활용된 사례는 무척 다양합니다.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데이터를 직접 만들고, 만져보고, 정리해보는 경험은 무척 중요합니다.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 문제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기초자료가 되기도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서비스나 프로토타입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죠.
일상관찰가 프로젝트와 같은 자발적 공익데이터 활동이 더욱 늘어나고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시민들과 함께,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활동을 이어나갈 빠띠의 소식 역시 관심 갖고 지켜봐주세요!🙏
✏️ 글 : 빠띠 워킹그룹팀 (action@parti.co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