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0일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와 청년참여연대가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공론장을 열었습니다. 이번 공론장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안녕하지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기 위해 열린 자리로, 다양한 발제와 대화를 통해 위로와 연대의 힘을 나누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빠띠 황현숙(단디) 활동가의 여는 말로 시작된 공론장에서는 네 분의 패널이 각각 청년, 언어, 정치, 제도의 네 가지 키워드로 발제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청년 파트를 맡은 신유진(대학생)은 ‘살아남은 1990년대생이 목도한 참사들’이라는 주제로 발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보고 듣고 자란 90년대생 청년들, 그리고 국민 모두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었는데요. 끔찍한 참사 이후 사회구성원들의 편의와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나 쉽게 희생자에게 전가되는 책임소재와 비난, 2차가해, 그리고 그 속에서 프레이밍 되는 청년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는 심정을 공유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비슷하게 오버랩 되는 10.29 이태원 참사 그 이후, 살아남은 우리는 애도를 지속하면서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능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과거의 죽음과 미래의 삶을 이어주는 연결성을 인지하는 것에서 진정한 애도는 시작되며, 이는 곧 나 자신을 보살피고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이겨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라는 말을 전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부재했던 안타까운 참사를 두 번 겪은 20대 청년 당사자 중 한 사람으로서, 공포와 슬픔 속에서 살아남은 청년이 그럼에도 기꺼이 소중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희망과 방향성의 메시지를 나누었습니다. 언젠가 살아남은 청년들을 수치로 셈하는 일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평생 옆에 둬야 할 사람들처럼 여기며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따뜻한 염원의 말을 끝으로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두 번째 발제를 진행한 최성용(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연구원)은 ‘참사를 대하는 목격자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놀다가 죽었다’ 등 희생자의 탓을 하는 언어가 만들어지는 현실적인 조건과 이유를 세 가지 맥락으로 분석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상징과 언어의 부재로, 세월호 참사와 비교하여 볼 때 이태원 참사는 참사의 성격과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징과 언어가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오염된 언어와 냉소이며, 국가 애도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애도를 강요하는 정부로 인해 정치가 애도의 언어를 오염시켰고, 이로 인해 시민들은 적절한 애도의 언어로부터 박탈되어 이로 인해 침묵과 냉소가 증가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이태원과 혐오로, 다문화적 공간으로 대표되는 이태원이 대중으로 하여금 위험하고 문란하고 낯선 곳으로 인식되어 이를 바탕으로 한 혐오의 담론이 형성되었다는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또한 참사의 목격자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위험인 이분법적 사고(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와 과잉된 동일시(나는 너다)라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하며 각자 다른 두 가지의 거리감 사이에서 적절한 연결감(나일 수도 있었다)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비난과 혐오의 말 속에 아직까지도 참사를 겪고 있는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해 이제는 목격자들이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용기를 이어받아야 할 때라는 다짐과, 앞으로 그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으로는 김창인(청년 정의당 대표) 발제자가 정치 키워드로 ‘참사 이후 정치, 우리는 왜 달라지지 못했을까’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국가 애도기간 선포는 국가가 참사를 기억하려 하기 보다는 망각을 유인하려 하는 대처였으며, 참사 이후 정부의 행정 절차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책임자 처벌의 부재와 꼬리 자르기, 그 누구도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는 행태 등의 잘못된 정치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절박한 요구에 국가와 정부와 정치가 응답하지 않는 상황에 의문을 느끼며, 이러한 적대적인 양당체제의 문제가 곧 대한민국 현실의 비극이라는 문제의식을 던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사회구성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야 하며, 시민들은 정부와 정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이를 위해 시민들 스스로부터 사회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 가는 과정, 무엇보다 서로 대화하고 연대하며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과 함께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네 번째로는 함대건(용산구의회 의원) 발제자가 ‘10.29 참사의 현황 및 제도적 보완 방안’이라는 주제로 제도 키워드의 발제를 진행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하였고, 어떻게 대처해야 했으며,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먼저 재난관리의 목적과 형태, 재난관리 방법의 단계별 유형(예방, 대비, 대응, 복구)에 대한 설명을 통해 10.29 이태원 참사를 심도 깊게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현존하는 법에 근거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 재난관리의 책임 기관이 이번 참사를 방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역할과 의무, 책임을 다했어야 했는지 면밀히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원인, 진상 분석 없는 허울뿐인 대책마련과 매뉴얼의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네 명의 발제가 모두 끝난 후 본격적인 테이블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청년, 언어, 정치, 제도 키워드에 따라 테이블을 나누어 키워드 별 특화질문과 공통질문에 관한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테이블 별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청년) 청년으로서, 이번 참사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및 느낌 공유
“혐오의 사회를 체감하여 분노했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회의적인 감정을 느꼈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반복되고 있음을 느꼈으며,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나의 애도 방법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상황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 주변에서 이번 참사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경험 공유
“이태원 참사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의미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10.29 날짜 그대로 기억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태원이라는 장소의 구체성을 기억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네이밍을 위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왜 이러한 네이밍을 하는 건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정치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경험과 생각 공유
“시민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도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참사에 대해 국민의 여론과 감정을 대변하는 정치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참사가 이슈화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고, 야당은 이를 더욱 공세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대안이나 해결방안을 위한 공론은 어디에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
(제도) 이번 참사가 벌어진 원인과 관련해 어떤 제도적 조치가 미흡했다고 생각하는지
“안전관리와 관련된 조례 등 매뉴얼이 없었기에 시스템과 체계의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찰력 부족 등 국가와 정부의 행정공백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간과 국가가 함께 대응하는 예방과 대비의 체계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공통)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분법적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같이 애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며, 혐오를 풀 수 있는 공론장이 부재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초 신고 이후 정부와 행정의 대응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이후에도 재난을 예비, 대응, 복구하는 매뉴얼이 자리잡지 못하는 등 안전에 대한 제도와 인식이 여전히 미비하다고 생각한다.”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향하는 2차 가해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의 역할인 것 같다.”
(공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참사의 공간을 애도의 공간 안전한 공간으로 보전하고 전환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건전하고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며, 일상에서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도록 꾸준한 논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전반적으로 가로지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체계적인 구축과 역할 수행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기 때문에 안전한 사회에 대한 정치와 시민의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
공론장을 마치며 참여자 분들의 소감을 간단히 나누었는데요, 참여자 분들은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안전하고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습니다. 벌어진 참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보았던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시민 공론장에 참여해 주시고 많은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글 : 청년참여연대 홍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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