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변했는데, 학교는 어떤가요?' 2부

'강산은 변했는데, 학교는 어떤가요?' 1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발제2 : 학생 인권 vs 교권이라는 담론을 넘어

두 번째 발제자는 ‘학생인권법과 청소년 인권을 위한 청소년 전국 시민행동'의 조영선 활동가였습니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고, 학생 인권과 교권 대립 프레임의 문제점, 본질적 문제, 학생 인권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를 발표했습니다.

“권력의 총량이 있고, 그걸 학생과 교사가 나눠 먹는 걸까요?”

그는 질문과 함께 학생과 교사의 역할이 다르며, 애초 인권이란 양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별개인 학생 인권과 교권을 마치 둘이 나눠 갖는 것처럼 말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교권이란 교사로서 지는 권위와 권력입니다. 권위는 강제할 수 없고, 스스로 말하는 순간 떨어집니다. 사실상 교권은 교사의 권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문제는 권력으로서의 교권이 선생님의 자의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학칙에 따라 교사가 체벌하면 된다는 말에, 그는 학칙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학칙의) 현재 기준을 보면 ‘예의가 바르지 못한 학생’, ‘용의가 바르지 못한 학생'처럼 기준이 모호합니다. 이 모호함을 선생님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체벌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학생마다 피부톤이 다릅니다. 같은 화장이라도 다르게 보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분명 똑같은 화장이고, 다르게 보일 뿐인데? 이 모든 게 선생님의 자의적 판단에 맡깁니다.”

일관된 기준 없는 선생님의 자의적 판단은 학생들에게 혼란만 일으키고, 교권과 학생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규제받는데, 학생들이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이 어떨지 생각할 수 있을까요?

조영선 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생들의 혐오 발언이 늘었다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부터 규제받는데, 학생들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들을지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 아니냐고.

그는 선생님들의 자의적 판단으로는 교권도, 학생들의 인권도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그대로 두고, 다른 방식으로 학교 내 인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대안은 뭘까요? 그는 학생 인권 보장이라고 말합니다. 학생인권법이 법으로 제정되고, 법안에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요. 그럴 때야 성평등 교육, 차별금지 수업을 해도 선생님들이 외부로부터 비판받지 않을 수 있고, 현재 이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외부로부터 학생과 교사 모두 보호할 수 있다고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전제의 강화를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말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가장 큰 변화는, 학교에서 맞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생겨서 누군가를 때릴 때 ‘이게 맞나?’라는 관념이 생긴 겁니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는 게, 인권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그룹 토론 : 학생 인권을 너머 어떤 어른이 될 지 논의합니다.

발제가 끝나고 세 질문으로 토론했습니다.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 하거나, 존중받았던 긍정적 경험이 있는지?, 학교 내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학교 내 인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습니다. 세 질문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토론했고, 인상 깊은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질문1 :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하거나, 존중받았던 긍정적 경험(혹은 목격한 사례)이 있는지?

  • 선생님이 항의에 대한 의견을 수용한 적이 있어서 앞으로 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긍정적인 경험도 있었다.

질문2 : 학교 내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 과거보다 정도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보장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처벌방식이) 과거에는 체벌을 가했다면, 현재는 상벌제도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질문3 : 학교 내 인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 학교라는 공간에서만큼은 아무리 비판해도 동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여러 주체가 각자 자리에서 대화나 협의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교사의 개인적 판단/역량으로 이뤄지는 게 아닌, 보편적인 학생 인권 관점이 필요합니다.

후기 : 오늘 촛불 하나를 켰습니다.

몇 년 전 한 동영상을 봤습니다. 6분으로 짧지만 강렬한 동영상입니다. 한 남자가 재판장에 물고기가 든 어항을 들고 판사에게 말합니다. “저는 오늘 현대 교육을 고소합니다.”

영상 속 남자는 지난 150년간 세상은 변했으나,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다양한 가능성과 개성 있는 학생들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재단하고, 학교에 학생을 맞추고, 과거를 교육한다고 말이죠. 학생의 개성과 꿈을 꺾고,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는 현대교육을 고소한다는 내용입니다.

비판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발제와 토론을 통해, 강산이 변한 제 중고등학생 때와 지금의 학교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바뀐 게 있겠죠. 하지만 본질도 바뀌었을까요? 여전히 개성과 학생 대신 규제와 학교, 입시가 있었습니다.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 그 변화의 시작을 오늘의 발제자들과 공론장에 모인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영선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가장 큰 변화는, 학교에서 맞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생겨서 누군가를 때릴 때 ‘이게 맞나?’라는 관념이 생긴 겁니다.”

아이들이 미래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 학생들이 미래입니다. 그들이 커서 사회의 팔과 다리, 허리, 머리가 됩니다. 현재는 그 수가 20%일지 모르나, 미래엔 100%입니다. 그런데 학생들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지금의 ‘어른' 아닐까요? 그 어른들은 학생들의 미래와 그들이 만들 사회를 얼마나 생각하고 듣고 있을까요? 어른의 요구에 맞춰 자신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학생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이야기하고 가꾸도록 하는게, 진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생활기록부에 기재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들으며 사회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와 상사를 비판했을 때 인사고과에 어떻게 반영될지 모르는 사회인의 두려움과 닮았으니까요. 사회의 미래인 학생들에게는, 과거의 교육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말해야 한다고, 말해도 된다고, 개성을 말해도 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선생님들이 더욱 학생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체벌받았던 게 추억거리가 아니라, 내 권리와 개성을 뽐내고, 선생님이 그걸 알아봐 준 걸 추억이라 말하는 학교 현장이 되길 바라봅니다.

백호영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촛불 하나를 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촛불이 커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작은 불씨가 산을 태웁니다. 공론장에 모인 사람들만큼 불씨가 번지길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들썩들썩 공론장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들리길 바라봅니다.

✏️ 글 : 윤성민 / 들썩들썩떠들썩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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