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같은 도시에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사실 서울을 살아가는 우리는, 바로 옆집에 사는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곤 하죠.

어쩌면 하나의 도시에 함께 산다기보다, 수백만의 서로 다른 일상들이 교차되며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표현이 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어요. 이 말인즉,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상의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빠띠가 서울시와 함께 만들어 서울에서 막 자라나고 있는, 어린 민주주의의 탄생기입니다. 그의 이름은 민주주의 서울. 줄여서 민서. 지난 이야기에서 빠띠는 광장을 채운 시민들, 투표소로 향하는 시민들의 촘촘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키워내기 위해 민서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구요? 2017년 10월 24일, 시민들은 민서에 여섯 개의 제안을 들려주었어요. 흠, 그런데 정말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민주주의를 퍼뜨리려면, 온라인을 넘어 우리가 직접 오프라인으로 나서보아도 좋지 않을까?

이번 편은 그해 겨울,
빠띠가 직접 서울 시민들을 만나러 떠난 이야기입니다.

유권자만 시민이 아니야, 투표만이 민주주의는 아니야

다시, 모두가 아는 이야기.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종종 잊어버리는 이야기도 있지요. 시민이라고 모두가 유권자는 아니라는 사실이요. 청소년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을뿐더러, 거기에 학생이라는 신분이 더해져 실질적인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약받기도 합니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 함께 어려움을 경험하고, 심지어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더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시민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빠띠는 생각합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목소리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될 수 없어도 민주주의 서울의 제안가는 될 수 있지요. 빠띠는 이런 상상으로, 청소년 제안가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만약 서울 시장이라면?”

청소년 제안가들은 금세 스마트폰을 들고 “제안하기” 버튼을 클릭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건내기 시작했어요. 한 청소년 제안가는 서울시에 더 많은 쓰레기통을 설치해달라고 제안했어요. 정동길 하면 으레 낭만적인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그 긴 길에 쓰레기통이 단 두 개 밖에 없다는 기억으로 남았거든요.

한편 “청소년 노동 권리 수첩”과 같은 컨텐츠가 있어도, 실제 일하는 청소년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전달되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웠던 청소년 제안가는, 노동교육의 의무화와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어요. 이런 내용들은 대강은 알아도, 당사자가 아니면 자세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들여다보기 어려운 삶의 문제. 빠띠는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 속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마이크를 들고 발로 뛰었습니다.

같은 처지를 만나며 커지는 당사자들의 공감

한국의 복지서비스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기 위해, 지원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를 정의합니다. 이런 복지서비스의 대상으로 정해놓은 이름 중에 “한부모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움을 주기 위한 이름붙이기는 사회에서 낙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부모 가정 중에서도 비혼모 가정은 이중의 사회적 편견을 마주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보니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더 어렵고, 그만큼 삶의 문제가 가려지면서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되지요.

빠띠와 만난 비혼모 제안가들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은 어려움,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심화(!)되는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았어요. 아이돌봄 서비스, 분유나 기저귀 지원 등과 같은 바우처만으로는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나 자신의 내면이 무너져가는 진짜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 자립을 위해 월급 수준이 높은 회사에 들어갔지만 다른 돌봄파트너 없이 홀로 높은 돌봄비용을 지출하다 보면 저축은 언감생심인데다 높은 소득기준 탓에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오히려 자립에서 멀어지는 모순같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입니다. 멀리서 보면 도움을 받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지요. 비혼모 제안가들이 서울시에 입을 모아 제시한 진짜 필요한 도움은 시간에 덜 구애받는 돌봄 서비스,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멘토였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은 빠띠는 아직 누구인지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도 만나러 갔습니다. 어쩌면 아직 당사자조차 아닌 사람들이죠. 이를테면 얼마 전부터 스스로를 ‘독립연구자’라고 부르기로 한 사람들이요. “독립연구자란 누구인가”부터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비슷하게 경험해 온 어려움과 필요한 요구들이 구체화되어갔어요.

대학이나 연구소에 속하지 않지만 ‘연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논의는, 함께 나누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한 민주주의였습니다. 나만의 문제인 줄 알았던 것을 끄집어내어 말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함께 경험하고 있는 문제일 때 드는 안도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나만 힘든 게 아니었네!’

일상의 어떤 민주주의는, 정책과 논리 이전에 이런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서울의 중심에서 작은 목소리들을 외치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보니, 빠띠가 잘 하는 건 ‘사회적 영향력’이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건져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려서, 다수가 아니어서, ‘심각’한 문제가 아니어서, 낯선 상황에 처해 있어서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 그렇기에 오히려 더 함께 풀어내야 할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언론에서, 학교에서 작은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어도 언제 어디서든 민서에서는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의 이야기가 영향력은 얻는 방법은, 힘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다른 시민의 ‘공감’을 얻는 것입니다. 구호와 깃발 아래 모이는 광장의 민주주의, 투표소의 민주주의가 다 담지 못하는 세세한 문제들을 작은 단위에서부터 조금씩 쌓아나가는 도시의 일상 속 민주주의.

그런데, 공감만 많이 많이 받으면 그걸로 이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걸까요? 오늘의 이야기에 소개된 문제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을까요? 그럴리가요! 빠띠는 계속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1화 민서의 탄생 : 시민이 제안하고 결정하는 서울, 일상 속 민주주의의 시작!

3화 민서는 자란다 : 제안의 통로에서 시민의 공론장으로

글. 희원
그림. 민티
편집. parti coop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기억하시나요? 그 해 광장에는 새로운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깃발을 든 시민들이 나타났고, 같은 구호를 외치다가도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했죠. 춤을 추는 시민도, 더 크게 화를 내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전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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